진정한 멀티플레이어를 가리자. 22일 빛고을에서 맞붙는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은 '반지의 제왕' 안정환-라울의 스트라이커 대결 못지않게 양 팀이 자랑하는 멀티플레이어들의 격전장이 될 전망이다. 한국에 '원조 멀티플레이어' 유상철(가시와)과 '히딩크 사단의 황태자' 송종국(부산)이 나선다면 스페인에는 최대 폭의 활동반경을 자랑하는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데포르티보)과 '카마초 감독의 비밀병기' 이반 엘게라(레알마드리드)가 맞불을 놓는다. 유상철은 이탈리아전 후반 히딩크 감독이 공격수 5명을 투입시키는 총공세를 펴는 동안 최종 수비수로 특명을 받고 미드필드에서 내려와 이탈리아의 날카로운 역공을 차단, 짜릿한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하는 멀티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줬다. 골키퍼만 빼고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그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 한판이었다. 오른쪽 터치라인을 따라 양쪽 끝에서 끝까지 휘젓고 다니는 송종국도 공격과 수비가 따로 없는 다기능 플레이어. 스페인 왼발의 명수 데페드로를 중원부터 압박, 차단하고 여차하면 왼쪽 수비수후안프란의 뒤쪽에 생기는 공간을 칼날같이 파고들 기세다. 이에 맞서는 스페인의 이반 엘게라도 올라운드 플레이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마당발을 뽐낸다. 소속팀 레알마드리드에서는 미드필더로 포진하는 엘게라는 16강 아일랜드전에서 노쇠한 수비진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중앙수비수로 전격 출격했다. 좌우백 후안프란과 푸욜이 공격가담시 수비공간에 공백이 생기고 주장 이에로의 스피드가 떨어지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깜짝 카드. 이에 엘게라는 10여차례 태클을 감행하는 적극적인 플레이로 카마초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엘게라가 2000년 유럽선수권대회 이후 빠짐없이 선발 출장하고 있는 것도 바로 포지션 소화능력 때문. 184㎝, 71㎏의 호리호리한 체격과 차분한 스타일 때문에 멀티플레이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플레이메이커 발레론도 보기와는 달리 투지에 불타고 있다. 발레론은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팀이 필요로 하면 뭐든지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사이드에 서는 편이 더 편하지만 지금은 자리를 가릴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AFP는 발레론의 `희생'이 스페인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까지 표현했다. 카마초 감독은 소속팀에서 섀도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공격형 플레이를 펼치는 발레론에게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주문하고 있다. 또다른 공격형 미드필더인 가이스카 멘디에타(라치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레론은 상황에 따라 공격형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하며 활동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울산=연합뉴스)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