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출전했다."


한국을 사상 첫 월드컵 8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의 나라 네덜란드 국민이 조각을 앞둔 집권당의 최고 지도부에서부터 외무부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왕립축구협회 관계자들에서부터 히딩크 감독의 생가가 있는 두틴헴 주민들까지, 또 응원가 "우리의 꿈"을 부른 그룹 더블디에서부터 교민들과 거래하는 현지인 고객들 및 일반 시민들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 한마음이다.


"한국의 이번 대회 선전은 한국 국민뿐만 아니라 우리 네덜란드 국민의 꿈이기도 하다. 네덜란드는 본선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히딩크 감독이 있으니 우리는 같이 출전한 것이다."


안경업자로 월드컵대회 개막직전 한국 방문길에 한국 국민의 히딩크 감독과 네덜란드에 대한 애정에 감동, 귀국하자마자 친구인 더블디에게 양국을 이어주는 노래를 만들 것을 제의했던 마이크 스피츠는 이탈리아전 승리 직후 이렇게 말했다.


"히딩크 감독이 있으니 우리도 한국의 승리의 기쁨을 조금은 나눌 수 있는 자격이 있었으면 한다"


네덜란드 외무부의 로버트 밀더스 아주국장도 경기 직후 김용규(金龍圭) 주네덜란드대사에게 축하편지를 통해 한 말이다.


이 편지를 대사관저에서 열린 축하리셉션에서 김 대사에게 전한 보트 아주국 부국장은 자신과 직원들은 국장실에만 TV가 있어 경기도중 외신을 통해 5분마다 경기 진행상황을 지켜보다가 마지막 30분간은 국장실로 몰려가 TV중계를 봤다고 밝혔다.


보트 부국장은 한국이 동점골을 터뜨려 아주국 직원들이 함성을 지르자 같은 층에 있던 중동국 직원들까지 몰려와 함께 한국을 응원했다며 이같은 분위기가 양국관계 증진에 매우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전날 대사관저에서 김 대사 주최로 열렸던 정계인사들과의 만찬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 대사가 히딩크 감독에게 시민권을 주려는 정부와 국민의 여망을 전달하자 연정 파트너인 자유당(VVD) 지도자 한드 덱스탈은 "히딩크는 절대로 줄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견지, 김 대사가 "협상이 필요하겠다"고 응수했다는 것.


경제장관 물망에 오르고 있는 기민당의 헬라 바우트 드로스테 국회 상공위원장과 함께 만찬에 참석한 남편 드로스테씨는 이날 만찬메뉴에 즉석에서 한국 응원가 가사를 작사, 베사메무쵸 곡에 붙여 노래를 불렀을 정도였다고 김 대사는 전했다.


왕립축구협회의 홍보실장 허먼 푸스씨는 자신도 네덜란드 언론과 국민이 한국팀에 보내는 성원과 관심에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전임 국가대표팀 감독이 맡은 한국팀이 8강까지 진출했기 때문에 한국팀 성적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가장 큰 기사가 되는 독일이나 프랑스팀에 대한 기사보다 한국팀에 대한 기사가 훨씬 더 많이 나오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탈리아전이 열린 18일 아침에 발행된 네덜란드 최대 일간지 디 텔레그래프는 "히딩크에게 경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우리 같이 노력해서 한국의 8강 진출을기원하자"고 호소했을 정도다.


네덜란드 언론의 한국팀과 히딩크 감독에 대한 관심은 이탈리아전이 열렸던 18일의 보도경쟁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헤이그의 한국대사관 1층에서 대사관 전직원과 한인사회 대표 등이 모여 응원전을 펼치자 네덜란드 최대의 TV방송인 NOS, 공영방송인 RTL, 상업방송인 NOVA 등 3대전국TV 방송 취재팀이 몰려들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이날 경기에 앞서 주요 일간지들은 히딩크 감독을 중심으로 한국팀의 선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드 폴크스그란트는 외국인 고치들을 경원하던 한국 국민들이 이제는 가장 큰 팬이 됐다고 소개하면서 히딩크 감독이 능력위주의 용병술로 한국 축구계의 서열, 지연, 학연 위주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았다고 평가했다.


데텔레그래프는 히딩크 감독의 영입이 자신이 한 일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한 정몽준 축구협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일반 국민의 한국에 대한 열기도 역시 대단했다.


대회 개막 이전에는 시들했던 월드컵 열기가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이 폴란드를 이기자 서서히 달궈지지 시작하더니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진출하면서부터는 폭발적으로 불붙기 시작했고 주네덜란드대사관 이병문 서기관은 말했다.


대사관에서 10년 이상 운전기사로 근무했다는 바부씨는 이웃에 사는 젊은이들이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긴 날 폭죽을 터뜨리며 축하했다고 전했다.


홍순용(洪淳龍) 한인회장은 요즘 네덜란드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느라 개인사업에 신경쓸 겨를이 없을 정도였으며 이탈리아전 승리 직후에도 1시간여를 현지 매체들과 인터뷰를 했다. 사정은 로테르담지역 한인회장인 박기열씨도 마찬가지.


로테르담에서 선박수리업을 하는 이욱현씨는 경기직후 차창 밖으로 태극기를 들고 달리니까 이른 본 현지인들이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축하해주더라고말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섬유무역업을 하고 있는 최원규씨 역시 경기직후 현지인 고객들의 축하전화를 받느라고 바빴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이민 20년이 넘는 이들은 이민생활을 통틀어 요즘처럼 기쁜 때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헤이그=연합뉴스) 김창회특파원 ch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