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끝장'인 월드컵 결승토너먼트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명암이 엇갈리면서 감독들의 용병술에 축구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피말리는 승부에서 감독의 선수운용이나 작전 변경은 승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제골을 허용해 뒤지고 있거나 경기가 잘 안풀려 고전할때마다 축구팬이나 선수들은 답답한 마음에 감독이 '조화'를 부려 기적의 바람을 일으켜주길 기대한다. 이번 월드컵 16강전에서는 한국의 8강 신화를 실현시킨 거스 히딩크 감독과 루디 푀일러 독일 감독의 용병술이 빛을 발했다. 반면 이탈리아의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은 너무 일찍 '1-0 굳히기'에 나섰다가 히딩크와의 '명장대결'서 완패했고 한국과 8강에서 마주칠 스페인의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은 아일랜드와의 16강전에서 성급한 선수 운용으로 '지옥'을 갔다왔다. 일본의 필리프 트루시에 감독도 충분한 승산이 있었던 터키와의 경기에서 너무 늦게 승부수를 띄우는 바람에 기회를 잡지 못한게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히딩크는 전반 이탈리아에 선제골을 내준뒤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고 공격 활로를 찾지 못하자 후반 18분 수비수인 김태영 대신 황선홍을 투입한데 이어 5분후에는 역시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남일을 빼고 이천수를 들여보냈다. 이때부터 이탈리아는 수비에 급급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공격의 주도권을 쥐고 맹렬하게 문전을 두드렸음에도 골이 터지지않자 후반 38분에는 간판 수비수이자 주장인 홍명보 마저 벤치로 불러들이고 차두리를 투입했다. 수비수 3명을 빼고 공격수 3명을 들여보낸 히딩크의 작전은 멋지게 성공, 결국 후반 43분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뒤 연장전에서 안정환의 골든골로 8강 신화를 창조했다. 독일의 푀일러 감독도 파라과이와의 16강전에서 평상시와는 다른 선수운용으로 어려운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푀일러는 이번 대회 조별 리그 3경기에서 투톱으로 미로슬라프 클로세와 카르스텐 양커를 내세웠으나 파라과이전에서는 양커 대신 단신(171㎝)의 올리버 노이빌레를 선발 출장시켰다. 노이빌레는 0-0으로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던 후반 43분 천금의 결승골을 뽑았고 푀일러의 선수기용은 빛을 발했다. 반면 이탈리아의 트라파토니는 전반 18분 비에리의 선제골을 지키기 위해 후반들어 일부 공격수를 수비쪽으로 돌리는 등 '빗장'을 걸어 잠갔으나 설기현에게 동점골을 허용한뒤 연장전서 골든골을 허용, 허망하게 무너졌다. 스페인의 카마초 감독도 아일랜드와의 16강전에서 1-0 승리를 지키기위해 라울 등 스트라이커들을 너무 일찍 벤치로 불러 들이고 수비위주의 축구를 하다 실점한 뒤승부차기에서 겨우 이겨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골차 승부를 지키기위해 후반 20분이후 공격 투톱인 라울과 모리엔테스, 게임메이커인 데 페드로를 빼고 수비에 치중했으나 경기 종료직전 아일랜드의 해결사 로비 킨에게 동점골을 허용, 작전상의 문제점을 드러냈던 것. 일본의 트루시에 감독은 터키와의 경기에서 선수기용에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본은 전반 12분 터키에 선취골을 허용한뒤 우세한 경기를 하면서도 만회골을 만들지 못해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으나 후반 왼쪽 최전방공격수 알렉스를 스즈키로, 이나모토를 이치카와로 바꿨을 뿐이었다. 트루시에는 이치카와가 부진하자 경기종료 4분을 남기고 다시 발빠른 모리시마를 투입했고 이때부터 공격은 한 층 예리해졌으나 시간이 없어 승부의 저울추를 되돌리는데 실패했다. 모리시마를 좀 더 일찍 들여보내 터키의 문전을 괴롭혔으면 다른 결과를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은 한 판이었다. (서울=연합뉴스) kim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