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응원해야하나'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의 사실상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브라질과 잉글랜드의 8강전을 앞두고 공동개최 파트너인 일본 축구팬들이 남모를 고민에 빠졌다. 잉글랜드와 브라질 모두 이번 월드컵에서 일본 축구팬들이 마치 자국팀처럼 열렬히 응원해온 팀이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는 `형제국' 브라질을 응원하는 게 도리지만 `꽃미남' 데이비드 베컴을 앞세운 잉글랜드에 마음이 끌리는 것도 사실. 우선 브라질에 대한 일본인들의 애정은 전통적인 양국 관계사를 통해 볼때 무척각별하다. 양국은 19세기말 우호통상조약을 맺은 이후 25만명 이상의 일본인들이 브라질로집단 이주하고, 일본계를 포함한 브라질인 수만명이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있는 등1세기 이상의 끈끈한 우호협력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혈맹에 가까운 양국은 축구교류에서도 남다른 우정을 과시해왔다. 현재 청소년대표팀의 절반 가까이가 브라질 유학파이고 제2의 나카타와 이나모토를 꿈꾸는 꿈나무라면 브라질에 한번정도 유학하는 것이 통과 의례로 돼 있다. 또지난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라모스가, 이번 대회에는 산토스가 브라질에서 귀화해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 잉글랜드를 대표로 내세운 영국 역시 브라질 못지 않게 일본에 친근감을 주는나라다. 일본은 국가체제가 영국과 같은 입헌군주제의 나라. 오랫동안 왕실간에 전통적교류가 있어온 데다 과거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 것도 비슷하다. 이런 일본의 동질의식에 불을 질러 행동으로 이끌어낸 게 바로 베컴이었다. 실력에 `화끈한' 외모까지 지닌 베컴의 개인적 인기와 맞물려 일본내 잉글랜드열기는 `광풍'으로 표현될 만큼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일본대표팀이 터키와의 16강전을 하루 앞둔 17일에도 거의 모든 스포츠신문이베컴을 1면 톱기사로 실었고, 잉글랜드팀이 가는 곳마다 나이를 불문하고 수많은 여성팬들이 장사진을 치고 `황태자'의 출현을 목놓아 기다리고 있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일본의 모습은 이미 지난 17일 고베에서 열린브라질과 벨기에의 16강전에서 잠깐 노출됐다. 4만2천 관중석이 개나리색 물결로 뒤덮일 만큼 브라질에 대한 응원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서도 베컴이 본부석에 나타나 카메라에 잡히자 수천명의 일본 관중들이 일제히 몰려들어 한때 통제선이 무너지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진 것. 당시 여자 자원봉사자들까지 정신이 팔려 "베컴 얼굴이나 한번 보자"며 행렬에가세하는 바람에 경찰이 극성팬들과 몸싸움까지 벌여야했다. 이제 결단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다. 잉글랜드와 브라질이 열리는 곳은 21일 시즈오카월드컵경기장. 시즈오카 에코바스타디움이 어떤 색으로 물들지 영국과 브라질 양국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자국팀의 탈락으로 갈 곳을 잃은 일본 축구팬들의 에너지가 어디로 분출될지 주목된다. (요코하마=연합뉴스)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