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말리는 경기였다. 각본없는 드라마에 선수도 관중도 울고 웃었다. 16일 오후 8시 30분 8강 티켓을 놓고 맞붙은 `이베리아 반도의 전사' 스페인과`보이스 인 그린(Boys in Green)' 아일랜드의 경기는 120분의 시간으로도 승부를 가릴 수 없는 처절한 전투였다. 지면 탈락하는 절박한 심정은 양팀 22명의 전사 모두에게 똑같았지만 승리의 여신은 결국 마지막에 스페인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대회 첫 승부차기. 양팀이 5명씩 키커로 나섰지만 스페인의 마지막 키커 가이스카 멘디에타가 나설때까지도 승부는 안갯속이었다. 아일랜드는 첫 키커인 로비 킨이 멋지게 오른발 슛으로 성공시켰지만 2번째 키커 매슈 홀랜드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가면서 불길한 조짐을 보였다. 데이비드 코널리, 케빈 킬베인의 슈팅도 스페인 이케르 카시야스 골키퍼의 손에연거푸 걸렸다. 스페인 투사들의 부담도 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에로, 바라하의 성공으로 2-1로 앞서가던 스페인은 후안프란의 슛이 오른쪽골대밖 벗어나더니만 믿었던 발레론마저 어이없이 왼쪽 골대옆으로 흘러나갔다. 아일랜드의 마지막 키커 스티브 피넌의 골로 점수차는 2-2. 성공하면 지긋지긋한 월드컵 불운에서 벗어나 8강 고지에 올라서지만 실패할 경우 페널티킥을 다시 차야 했다. 마지막 키커로 나선 가이스카 멘디에타는 팀의 운명이 자신의 발끝에 놓였음을아는듯 몇번이고 공을 만지고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공앞으로 다가서 마음을 추스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서너발짝 뒤로 몸을 뺐던 멘디에타는 힘차게 박차고 나가 골문 중앙 오른쪽으로 강하게 슛을 날렸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아일랜드의 셰이 기븐 골키퍼가 아차 싶어 몸을 틀었지만 이미 공은 네트를 출렁인 뒤였다.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보던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과 코칭스태프, 그라운드에 서 있던 선수들이 모두 멘디에타를 향해 달려갔고 아일랜드 선수들과 응원나온 팬들은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에 앞서 스페인은 전반에 바라하, 데 페드로,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루이스엔리케 등 미드필더들의 활발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패스를 앞세워 경기를 주도했다. 전반 3분 아크 왼쪽에서 로비 킨에게 첫 슈팅 기회를 내준 스페인은 5분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라울의 헤딩슛으로 응수한뒤 불과 3분만에 첫 골의 희열을 맛봤다. 푸욜이 오른쪽 코너부근에서 스로잉한뒤 엔리케로부터 리턴패스를 받아 페널티지역 오른쪽에 있던 모리엔테스에게 정확히 센터링을 날리는 순간 모리엔테스의 고개가 휙 젖혀지면서 공은 그림같이 아일랜드의 골네트로 빨려들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후반 라울과 데 페드로를 수비수로 교체하면서 한골을 지키려는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결국 그것이 독이 됐다. 16분 후안프란이 데이미언 더프를 태클하다 내준 페널티킥을 골키퍼 선방으로막아낸 스페인은 종료 직전 이에로가 닐 킨의 상의를 붙잡아 다시 페널티킥 기회를내줬고 끝내 로비 킨에게 한방을 허용했다. 이후 스페인은 더이상 교체할 여유가 없던 30분간의 연장전에서 다비드 알벨다가 부상으로 벤치에 앉아 10명만이 싸우는 악조건속에 아일랜드의 파상공세를 간신히 막아내야만 했다. (수원=연합뉴스) 특별취재단= yks@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