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멍군의 명승부였다. 15일 독일과 파라과이의 2002한일월드컵축구 16강전에서 후반 막판 한 골을 내준 파라과이의 '골넣는 골키퍼'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스트라스부르)가 경기에선 졌지만 현역 최고의 수문장 독일의 올리버 칸(바이에른뮌헨)과 펼친 골키퍼 정면대결은 그 자체 만으로 관중들의 흥미를 배가시켰다. 이날 33번째 생일을 맞은 칸은 경기 전부터 라이벌 칠라베르트를 향해 "내 생일잔치를 망치지 말라"며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수세에 먼저 몰린 쪽은 칸이었다. 전반 20분 파라과이의 윙백 프란시스코 아르세의 통렬한 왼발 슛이 날아오자 칸은 양손을 모아 펀칭해 첫번째 위기를 넘겼다. 두번째도 칸의 위기. 전반 36분 로케 산타크루스 대신 최전방에 교체 투입된 캄포스가 수비를 접고 때린 오른발 강슛이 골문 왼쪽으로 빨려들자 칸은 지체없이 몸을 날렸다. `고릴라'라는 별명이 무색한 순발력으로 빨려들어가던 볼을 감각적으로 쳐내자 독일 응원석에선 일제히 `칸'을 연호했다. 칸은 전반 26분 최전방의 마르코 보데에게 단 한번에 연결되는 롱킥으로 보데가 띄우지만 않았으면 골이 됐을 만한 찬스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에 맞서는 칠라베르트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조별리그 마지막 슬로베니아전에서 속칭 `알까기' 골을 허용해 체면을 구기고 2게임에서 4골을 허용해 `갈 때가 됐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칠라베르트. 그러나 이날 그의 움직임은 앞선 2게임과는 확연히 달랐다. 후반 8분 독일 발라크의 발에서 이어진 보데의 헤딩 슛. 칠라베르트는 중심을 땅에 붙이고 침착하게 내려찍는 볼을 잡아냈다. 그 다음엔 후반 16분 올리버 노이빌레의 오른발 슛. 수비벽을 뚫고 들어오는 강력한 슈팅이 골문 오른쪽으로 향하자 칠라베르트는 육중한 몸에도 불구하고 고무공같은 탄력으로 그림같은 캐치를 해냈다. 후반 28분엔 보기드문 명장면이 연출됐다. 바로 칠라베르트와 칸의 직접 대결. 독일 프랑크 바우먼의 파울로 얻어낸 프리킥 찬스에서 칠라베르트는 쏜살같이 하프라인을 넘어 나와 페널티아크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친 지역에서 프리킥을 쏘았으나 아쉽게도 크로스바를 넘기고 말았다. 칠라베르트는 후반 43분 이날의 '영웅' 노이빌레에게 결승골을 내줬지만 골키퍼로서는 손쓰기 어려운 슈팅이었다. `철혈 수문장' 칸과 `떠버리 카리스마' 칠라베르트의 첫 맞대결은 1골 차로 승부가 갈렸지만 두 사람 만의 대결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서귀포=연합뉴스)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