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전후반 90분의 짜릿한 드라마가 계속되는 동안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교민사회에는 너와 내가 없었다. 단지 `우리'와 `대~한민국' 만이 있을 뿐이었다. 2002한일월드컵축구 조별리그 D조 최종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포르투갈팀을 1-0으로 제압하고 본선 자력 진출 꿈을 이룬 14일 모스크바 시내는 교민들의 환호로 물결쳤다. 시내 주요 음식점과 업소 등에 모여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응원한 교민들은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서로 부둥켜 안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끊어오르는 환희를 억누르지 못했다. 교민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손에 손을 잡고 덕담을 건네며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의 노고를 치하했다. 또 몰라보게 성장한 대한민국의 국세에 감격해 했다. 0...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생중계해준 R식당은 교민과 학생 250여 명이 몰려 입추의 여지 없이 붐볐다. 근처 J 업소 등 역시 경기 중계를 해준 업소들도 여지 없이 발디딜 틈이 없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붉은 악마 티와 붉은 머리띠 등을 두르고 나온 교민들은 선수들의 투지어린 일거수 일투족에 열광적 응원으로 화답했다. 교민들은 선수들의 파인 플레이가 펼쳐질 때마다 '붉은 악마' 공식 응원구호인 "대~한민국"과 "짝짝~짝~짝짝" 박수를 연발했다. 화면이 앞사람의 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대한민국 응원 소리는 더욱 높아갔다. 후반 25분 드디어 고대하던 결승골이 터지는 순간 식당 안은 떠나갈 듯한 환호와 열광적 응원으로 출렁였다. 이영표가 포르투갈 페널티 에리어 왼쪽에서 센터링한 볼을 맞은편 박지성이 가슴으로 트래핑, 상대 수비를 살짝 제치고 왼발로 강슛, 그물을 가르자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교민들은 서로 얼싸안고 "대한민국, 박지성, 히딩크 파이팅"을 연호했다. 드디어 월드컵 16강 꿈을 이룬다는 들뜬 기분으로 포르투갈의 막판 공세를 가슴졸이며 지켜보던 교민들은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 휘슬이 울리자 장내가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박수와 환호성 속에 자리에서 일어선 교민들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다른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짜릿한 드라마가 끝난 것을 못내 아쉬워 했다. 0... 붉은 악마 티를 입고 교민들과 함께 경기를 관전한 정태익(鄭泰翼) 주러대사는 경기 직후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만세 삼창'을 이끌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한국팀 승리에 고무된 업소측은 즉각 맥주와 음료수 무료 제공을 약속했고, 모스크바의 저녁은 곧바로 한바탕 질펀한 잔치 분위기로 빠져들었다. 모처럼 찾아온 모스크바의 짜릿한 즐거움은 밤이 깊도록 계속돼 `모스크바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연출됐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이봉준 특파원 joon@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