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격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이영표의 정확한 센터링에 이어진 박지성의 그림같은 한 방이 우리 모두를 꿈의 나라로 인도했다. 90분 동안의 접전이 끝나고 주심의 종료 휘슬이 길게 울리자 선수와 관중들은 모두 넘치는 감격으로 한덩어리가 되었다. 건강하고 정직한 육체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향연이었다. 치열한 몸싸움으로 공간을 확보하던 설기현과 날렵한 드리블과 슈팅으로 문전을 위협하던 안정환, 포르투갈 선수들의 육탄 슬라이딩을 뛰어넘어 질주하던 유상철과 송종국과 이영표, 길목마다 지키고 서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던 홍명보와 최진철, 김태영과 김남일, 포르투갈 공격수들의 슈팅을 온몸으로 막아내던 이운재. 이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저마다 수많은 스틸사진이 되어 문학경기장의 밤하늘을 뒤덮어 버렸다. 월드컵 16강은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 축구 앞에 서있던 요지부동의 문턱이었다. 월드컵 대표팀이 출범한 후에는 물론이고 폴란드전에서 감격의 첫승을 따낸 이후에도 우리 팀의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마지막 관문을 지키고 있는 수문장은 FIFA 랭킹 5위의 포르투갈. 비록 첫 게임에서는 충격의 패배를 당했지만 폴란드와의 2차전에서 제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막강 화력의 우승후보였다. 하지만 오늘밤 한국축구의 영웅들은 이런 의심과 회의를 일거에 날려버렸다. 그동안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진짜 덫은 자신감의 결여였음을 그들은 우리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은 스스로 '아시아 축구의 맹주'라고 자칭해 왔지만 개개인의 역량으로 보나 대표팀의 전력으로 보나 세계 축구의 변방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놀라운 역량과 성적을 보여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히딩크는 마술사라고들 생각했다. 지나고 나면 그것이 바로 길이었고 오르고 나면 봉우리는 낮아지는 법이다. 한국 축구는 엄청난 잠재력과 열망으로 들끓고 있던, 수없이 흔들어댄 맥주병이었다. 히딩크는 그 병마개를 따주었고 용솟음쳐 오르는 힘을 적절하게 제어함으로써 방향을 잡아주었다. 열등감과 패배의식이라는 병마개를 따버린 것, 그것이 히딩크의 마술이었다. 이제 한국 축구는 월드컵 16강이라는 마지막 문턱을 넘어섰다. 오늘 우리 선수들은 스스로 판을 짜고 완벽하게 마무리를 했다. 1-0으로 리드하던 후반 막판에는 피구를 좀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히려 포르투갈을 응원하게 될 정도였다. 오늘의 승리가 감동적인 것은 공정한 게임과 정직한 승부를 통해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로 획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눈을 의심하지 말자. 우리 선수들은 지금 역사가 아니라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