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바다가 일어섰다.' 초록색 그라운드와 붉은색 스탠드가 어울려 환상적인 대칭을 이룬 데칼코마니의한복판에서 앙헬 산체스 주심이 종료 휘슬을 울리는 순간 붉은 바다는 초록 잔디마저 뒤덮어버릴 듯 사나운 해일로 변했다.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가 천지를 진동했고 인천문학경기장 하늘로 불끈 솟은 한국의 역사적 16강행은 5만여 관중들의 가슴과 가슴속에 깊숙이 아로 새겨졌다. 그라운드에서는 선수와 감독들이 어깨동무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스탠드에서는붉은 악마들이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붉은 악마들은 멀리 서해 바다가 6월의 석양에 물드는 초저녁부터 빨간 꽃잎처럼 문학경기장의 스탠드로 한잎, 한잎 나부끼며 내려앉기 시작했고 경기시작 한시간전에는 온 스탠드를 뒤덮었다. 어제의 불신과 반목, 갈등의 진흙탕을 감싸안은 붉은 꽃잎들이 밤이슬을 맞으며신새벽을 준비하듯 붉은 악마들은 월드컵의 열기를 우리 민족의 일체감과 신뢰,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축구의 바다를 밤새 넘실댔다. 붉은 악마들은 '박지성'을 외치고 '대한민국'과 '코리아'를 노래했으며, '히딩크'를 연호했다. "며칠전부터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다녔다"는 나기환(39.학원강사)씨에서부터 "마음은 떨리는데 규정상 소리높여 응원도 못해 답답하다"는 자원봉사 요원 김누리(23.학생)양까지 나이도, 직업도, 출신지역도 묻지 않은 채 평범한 사람들이 힘과정성과 영혼을 합쳐 '우리'를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붉은 악마'들은 우리만의 이기주의, 배타주의가 아니라 '남'도 끌어안는 포용을 보여줬다. 포르투갈의 열광적인 응원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우리의 새로운 영웅 거스 히딩크는 한민족의 마음을 세계를 향해 열어주는 창문역할을 해냈다. 한국 축구는 그를 통해 월드컵 첫승과 16강을 이뤘고, 한국인들은그를 통해 '남'에 대한 편협함을 던졌다. 이제 인천에서 가장 존경받는 외국인은 맥아더가 아니라 거스 히딩크가 될지도모를 일이다. 단지 2명이 퇴장당하는 절체절명의 불리함속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포르투갈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아량이 아쉬웠지만 16강에 대한 염원과 환희가너무 컸기에 그들에 대한 연민은 시간을 두고 풀어내야 할 조그만 마음의 짐으로 묻었다. 이제 붉은 악마는 8강전과 4강전을 위한 태극전사들의 험난한 길에 등불이 되기위해 떠났다. 그러나 그들의 환호와 탄식, 함성과 한숨, 웃음과 눈물이 절절히 배어있는 문학경기장은 한국 축구가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한민족의 저력과 희망과 꿈을 상징하는 성지로 우뚝 서 있을 것이다. (인천=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