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가까스로 동점골을 얻는 등 고비도 있었지만 순탄하게 출발한 끝에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축구대회 16강진출의 금자탑을 세웠다. 태극전사들의 가는 길엔 거칠 게 없었고 한몸 한뜻이 된 4천만 국민의 성원도보이지않는 큰 도움이 됐다. 한국은 조별리그 첫 판에서 FIFA랭킹 38위의 폴란드를 맞았다. 본선 첫승과 16강 달성이라는 겨레의 숙원을 안고 4일 오후 폴란드와의 경기 장소인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 들어선 늠름한 태극전사들은 눈빛부터 달랐다. 거친 호흡을 내뱉는 등 다소 긴장된 모습도 보였으나 대다수가 '할수있다'는 자신감이 넘쳤고 얼굴엔 미소도 배어나왔다. 이윽고 관중석을 온통 붉게 물들인 응원단의 함성과 함께 경기 시작 휘슬은 울렸고 한국은 잠시 수세에 몰리는 듯 싶더니 대들보 황선홍(가시와)이 전반 26분 이을용(부천)의 센터링을 감각적인 왼발슛으로 연결, 골망을 흔들면서 분위기를 돌렸다. 득의양양해진 한국은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물리는 조직력을 과시하며 폴란드를압도했고 후반 8분 유상철(가시와)이 상대 아크 부근에서 오른발로 그물을 흔들어국민을 흥분의 도가니속으로 몰아넣었다. 폴란드도 라도스와프 카우즈니(코트부스)와 흑인 용병 에마누엘 올리사데베(파나티나이코스)를 앞세워 만회를 노렸으나 수비형미드필더 김남일(전남)을 뚫지 못해무위에 그쳤고 잠시 후 경기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호각소리가 길게 울렸다. 한국이 48년만에 월드컵 본선 첫승과 함께 16강 진출의 청신호를 알리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이튿날 전혀 뜻하지않은 소식을 접하게된다. 미국이 D조 1위는 떼어놓은 당상이라던 포르투갈을 잡아 16강의 국면을 요동치게 만들었고 따라서 한국도 미국전 필승 등 대폭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10일 미국과의 2차전이 열린 대구월드컵경기장.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포르투갈을 누른 미국의 전력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다마커스 비즐리(시카고) 등 공격수들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위협적이었고 결국전반 24분 클린트 매시스(매트로스타스)에게 뼈아픈 선취골을 내줬다. 한국은 초반부터 설기현(안더레흐트) 등이 결정적인 찬스를 무산시켜 땀을 쥐게하더니 후반 이을용(부천)이 천신만고끝에 얻은 페널티킥까지 실축, 온 국민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그러나 한국에겐 안정환(페루자)이라는 걸출한 해결사가 있었다. 후반 교체투입된 안정환은 패색의 암운이 짙어만가던 38분 이을용의 그림같은 센터링을 머리로 연결, 골네트를 가르면서 기어코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14일 인천문학월드컵경기장. 무승부만해도 16강에 오를 수 있었지만 필승작전으로 나선 한국은 1승1패로 궁지에 몰린 포르투갈과 서로 물러날 수 없는 일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축구강호 중 하나라던 포르투갈도 끈끈한 조직력으로 무장한 태극전사들의 길을 막지는 못했다. 세계적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한국은 박지성(교토)의 천금같은 결승골로 포르투갈을 보기좋게 녹다운시켰다. 긴장감도 없었고 세계 강호 중 하나와 싸운다는 부담감도 없었다. 다만 16강을향한 자신감만 충만했고 기필코 이기고야 말았다. 국민의 염원을 이룬 역사적인 나날이었다. (인천=연합뉴스) jc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