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처음 허용된 경기장내 전광판의 슬로모션 방영이 판정시비를 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경기장에서의 슬로모션 방영을 계속할 지의 여부가 다음 대회에서는 심각하게 논의될 전망이다. 예전같으면 TV를 통해 경기장면을 관전하는 시청자들이나 심판의 판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었으나 경기장내 전광판 슬로모션 방영으로 관중은 물론 그라운드의 선수들과 벤치에서도 판정의 정오(正吳)를 따질 수 있게 된 것. 이 때문에 판정에 대한 선수, 코칭스태프의 항의가 속출하고 관중들도 야유로써 오심을 '심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석연찮은 판정이 내려질 경우 선수들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먼저 향하고 심지어 심판에게 "전광판을 보고 직접 확인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의 김영주 주심이 브라질-터키전 판정으로 거센 비난에 직면했던 것도 브라질에 페널티킥을 선언한 장면과 경기종료 직전 히바우도의 `할리우드 액션' 장면이 전광판으로 명명백백하게 비춰졌기 때문이다. 또 11일 세네갈-우루과이전에서도 선제골로 이어진 페널티킥 판정에 대해 세네갈 공격수가 골키퍼 태클에 걸린 것처럼 '시뮬레이션'을 했음이 전광판 슬로모션으로 똑똑히 확인됐다는 게 경기장에서 경기를 지켜 본 이들의 지적이다. 평범한 반칙은 그나마 쉽게 지나치지만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페널티킥, 오프사이드 및 경고.퇴장 등의 판정에 대해서는 선수, 코칭스태프, 관중들의 민감도가 더욱 높은 게 사실. 경기장내 전광판 슬로모션 방영은 심판들에게도 적잖은 부담이 된다. 개막전 주심을 맡았던 알리 부사임 국제심판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슬로모션을 통해 오심으로 판명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판정이 정확했던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라도 전광판 슬로모션 방영은 심판에게 엄청난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TV시청자와 달리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한 수만 관중과 선수단 앞에서 '발가벗겨 진 느낌'이라는 게 심판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처럼 경기장내 전광판 슬로모션 방영이 심판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판정시비를 야기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국제축구연맹(FIFA)의 입장은 단호하다. 관중에게 더욱 수준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이를 허용한 FIFA는 경기를 치르는 팀 사이의 감정문제 등 문제의 소지가 있을 때만 슬로모션 방영을 제한하되 기본적으로는 이를 문제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키스 쿠퍼 FIFA 대변인은 "판정은 전광판내 슬로모션이 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심판의 몫"이라며 판정시비를 일축했다. (서울=연합뉴스) econ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