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우스' 안정환(26·페루자)이 꺼져가던 한국의 16강 진출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안정환은 한국팀이 미국에 1-0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32분 이을용이 좌측에서 올린 센터링을 보고 용수철처럼 솟구쳐 올랐다. 안정환이 부드럽게 공의 방향을 바꾸자 공은 골대 오른쪽 모서리를 향해 멋지게 빨려 들어갔다. 동점골이 터지는 순간, 온국민은 안정환을 연호했다. 안정환은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뽑히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히딩크 감독이 안정환의 체력과 수비가담 능력에 회의적이어서 태극마크를 달기가 쉽지 않았던 것. 하지만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을 계기로 안정환은 히딩크 감독을 만족시키기 시작했다. 넓은 활동 영역,날카로운 돌파에 이은 강력한 중거리 슈팅은 한국 유일의 '세리에A 리거'인 그에게서만 기대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서울 대림초등학교 때 선배의 권유로 축구에 입문했다는 안정환은 남서울중 서울기공 아주대를 거치면서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93년에는 고교 대표로 뽑혔고 94년에는 19세이하 청소년대표,97년에는 동아시아대회 및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표를 지냈고 그 해 월드컵대표팀 상비군에도 포함됐다. 프로축구에 뛰어든 98년 '베스트 11'에 선정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프로축구선수로서 최고영예인 MVP가 됐다. 2000년 7월에는 부산 아이콘스에서 이탈리아 페루자로 임대돼 빅리그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꿈을 마침내 이뤘다. 안정환은 그러나 히딩크호 출범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월드컵 본선에서 안정환이 '큰 일'을 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대표선수 중 최고의 테크니션이기도 하지만 세리에 A라는 세계 최대 빅리그에서 담금질한 그의 기량과 근성이 본 게임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빅게임 징크스'를 안정환에게선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귀공자풍의 인상과는 달리 가난한 집안 형편과 홀어머니를 모시고 생활,밑바닥의 헝그리 정신을 충분히 알고 있다. 때문에 어떤 게임에 나서든 자신의 기량을 1백% 발휘하는 당돌함도 갖추고 있다. 안정환은 월드컵을 앞두고 "개인적인 욕심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축구의 숙제인 첫승과 16강 진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욕심을 버리고 묵묵히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린 안정환. 그는 마침내 미국전에서 패색이 짙던 한국팀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보태줬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