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 H조 예선에서 9일 러시아팀이일본팀에 1대 0으로 패하자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훌리건들의 난동으로 시민1명이 숨지고 경찰관을 포함한 200여 명이 중경상을 입는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 일부 `스킨헤드'로 추정되는 난동꾼들은 한국 교민을 포함한 외국인들에 분풀이폭력을 행사했으며, 한 극성 팬은 러시아의 패배에 실망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시민 1만5천여 명은 이날 크렘린궁(宮) 옆 마네쉬 광장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봤으며 러시아팀이 일본팀에 0-1로 패하자 젊은이 300여 명이 흥분한 나머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주로 10대인 이들은 근처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폭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행인1명이 흉기에 찔려 숨지고 200여 명이 부상했다. 훌리건들이 외국인, 특히 일본인과 외모가 유사한 동양인들에게 분풀이를 하는와중에 일부 한국 교민도 폭행을 당하는 등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한국 교민은 `인터넷 교민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이날 오후 6시 10분께 칸코바 전철역에서 머리가 짧은 젊은이 8명으로부터 뭇매를맞았다"고 호소했다. 크렘린궁 옆 트베르스카야 거리내 일본 식당 한 곳과 중국 음식점 6곳도 피해를입었으며, 근처 차이코프스키 음대에서 열린 음악제에 참가했던 일본 유학생 5명도폭행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훌리건들은 구급차에도 병과 돌을 던져 의사 1명이 부상하기도 했으며 출동한경찰과 내무부 특수부대 `오몬' 요원들과도 충돌, 경찰 10여 명이 부상했다. 특히 진압과정에서 칼에 찔린 경찰관 1명은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위독한 것으로알려지는 등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일부 러시아 언론은 희생자 수가 3명에 이른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당국은 이들은 단순한 교통사고 피해자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훌리건들은 국가두마(하원)와 모스크바 호텔, 볼쇼이 극장 등 주요 건물 앞에주차된 차량에 불을 지르거나 마구 부수고 근처 상점들의 유리창도 파괴했다. 경찰은 난동으로 최소 7대의 승용차가 불에 타고 20여 대가 크게 부서졌으며 국영 RTR 방송국 보도 차량 1대도 파손된 것으로 잠정집계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언론학부 근처 루뱐카 광장에서는 17세 소년이 러시아가 일본에 진 것에 실망해 자살을 기도,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현장에서 난동에 가담한 60여 명을 긴급 체포하고 폭력 사태를 1시간여만에 진압했다. 현지 언론은 경찰이 이날 훌리건들이 대부분 도망한 뒤 관련자 검거에 나서는 등 늑장 대응을 해 피해를 키웠다고 비난하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방문 중 사건 발생 소식을 들은 보리스 그리즐료프 내무장관은 모스크바로 급거 귀환, 관련자 수사 등 사후 처리를 진두 지휘하고 있다. 내무부는 모스크바 일원의 각국 대사관과 공공장소에 대한 경비와 순찰을 강화하고 거리에서 젊은이들의 동태를 감시토록 했다. 경찰은 특히 일본 대사관을 비롯한 관련 시설에 대한 경비를 삼엄하게 펴는 한편 난동이 일어났던 마네쉬광장과 트베레스카야 거리 등을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모스크바시 당국은 마네쉬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철거하고 앞으로는 스포츠 경기 중계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이봉준 특파원 joon@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