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시민들은 9일 열린 2002한일월드컵축구 H조 예선에서 러시아팀이 일본팀에 0-1로 패하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크렘린궁(宮) 옆 마네쉬 광장과 스포츠 카페, 유흥 주점, 가정집 등지에서 경기를 지켜본 시민들은 자국 팀이 체력.전술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무릎을 꿇자 안타까워하는 분위기. 특히 시내 중심 마네쉬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관전한 1만5천여 모스크바 시민들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도 상당 기간 자리를 뜨지 못한채 허탈해 했다. 시민들은 러시아팀이 패한 원인은 우선 체력과 정신력에서 뒤졌고, 팀 전술도 중앙 돌파만 고집하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분석했다. 일부 축구팬들은 전반전때 페널티킥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그대로 무산되는 등 주심의 편파 판정도 패인의 하나라고 주장. 경기를 독점 중계한 국영 ORT TV의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 `볼쇼이 풋볼(큰 축구경기)'에 출연한 전문가들도 러시아팀의 체력과 전술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월드컵 공동 개최국으로서의 일본팀의 어드밴티지와 팬들의 열광적 응원도 무시 못할 장벽이었다고 지적. 전문가들은 그러나 아직 벨기에팀과 경기가 남아 있는 만큼 실망하지 말고 분위기를 다잡아 좋은 결과를 거둬줄 것을 올레그 로만체프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에 당부. 한편 이날 모스크바 시내 거리는 시민들 대부분이 외출을 삼간 채 집에서 TV를 시청한 때문인지 평소 휴일 보다 훨씬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크렘린궁 옆 마네쉬 광장과 트베르스카야 거리 등 시내 중심가와 도로는 러시아팀이 경기에 패한 것에 흥분한 젊은이들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며 일순간 무법천지로 변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난동의 와중에서 1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주로 10대들인 이들은 국가두마(하원)와 모스크바 호텔, 볼쇼이 극장 등 주요건물 앞에 주차된 차량 30여대에 불을 지르거나 부수고 근처 가게들의 유리창을 깨는 등 난장판을 연출했다. 이들은 또 소요 예방을 위해 출동한 경찰과 내무부 특수부대 `오몬' 요원들과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때문에 마네쉬 광장에서 함께 경기를 지켜본 일반 시민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고, 한국 교민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외부 출입을 삼가는 등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기도 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이봉준 특파원 joon@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