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웠지만 승리했더라면...' 10일 전국은 아쉬움의 장탄식으로 가득찼다. 한국축구대표팀은 4천700만명 국민 모두가 지켜 보는 가운데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른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본선 조별리그 D조 미국과의 경기에서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경기 내내 미국을 몰아붙였으나 오히려 선제골을 내주고 동점골로 겨우 기사회생하는 안타까운 경기였다. 경기장 뿐 아니라 서울 시청앞과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약 100만명이비를 맞으며 전광판 응원을 벌인 열기도 한국에게 월드컵 본선 2연승의 선물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그러나 온 국민이 목이 터져라 외친 열띤 함성이 패색이 짙었던 후반 33분 안정환의 멋진 헤딩 동점골을 이끌어냈다. 각각 1승을 먼저 챙긴 뒤 16강의 길목에서 격돌한 양팀의 무승부로 D조 16강 진출팀은 오는 14일 동시에 열리는 한국-포르투갈, 미국-폴란드 경기 결과로 가려지게됐다. 하지만 한국의 16강 진출 전망은 아직도 밝다. 미국에게 뜻밖의 1패를 당한 포르투갈이 이날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수중전 끝에 폴란드를 4-0으로 꺾었지만 한국은 포르투갈과 비기기만 해도 자력으로 16강에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과 비기면 한국은 1승2무승부로 승점5가 돼 승점4(1승1무1패)에 그치는포르투갈을 제치고 16강에 나간다. 14일 미국과의 최종전에서 이겨봐야 승점 3점에 불과한 폴란드는 이날 패배로탈락이 확정됐다. 따라서 한국의 16강 진출 티켓은 '꼭 이겨야 하는' 절박한 포르투갈의 총력전에어떻게 맞서느냐에 달렸다.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응원단으로 서울 광화문 등지가 거대한 붉은 물결로 가득차는 등 후끈한 열기가 전국을 메운 가운데 벌어진 미국전에서 한국은 초반 페이스가 좋은 미국을 여유있게 다뤄가며 쉽게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한국은 결정적인 골 찬스에서 잇따라 마무리 실수가 이어졌고 기습을 노린 미국은 전반 24분 존 오브라이언이 날린 단 한번의 패스를 클린드 매시스가 왼발로 강하게 차넣어 선제골을 뽑았다. 전반 39분께 얻은 페널티킥을 이을용이 실축하는 등 파상공세에도 미국의 골문을 열지 못한 한국은 머리를 찢긴 황선홍의 붕대투혼에도 허망하게 패전의 위기에몰렸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 33분 교체 멤버로 투입된 안정환이 이을용의 긴 센터링을머리로 받아넣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이 따낸 14번째 골이자 첫번째 헤딩골. 안정환과 선수들은 '오노 골 세리머니'로 '지옥'에서 빠져나온 기쁨을 극적으로표현해냈다. 한편 오이타월드컵경기장에서 맞선 H조 벨기에와 튀니지는 1-1로 비겨 최종 3회전에서 16강 진출팀을 가리게 됐다. 2무승부의 벨기에는 러시아와 최종전을 반드시 이겨야 하며 1무1패의 튀니지는홈팀 일본에게 큰 점수차로 승리해야 2라운드 진출할 수 있다. ◆한국-미국(D조. 대구) 수 차례 결정적인 골찬스를 전방 공격수들이 골로 결정짓지 못해 가까스로 무승부를 기록하는 안타까운 한 판이었다. 한국은 경기시작 50초만에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미국에 프리킥을 허용, 불안했으나 클로디오 레이나가 찬 프리킥이 수비벽에 맞고 나와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첫 기회가 찾아온 것은 전반 6분. 박지성이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전진 패스하자 이를 받은 황선홍이 수비를 넘겨 설기현에게 로빙패스했고 설기현이 골지역 왼쪽에서 발리 슛을 날렸으나골문을 빗겨갔다. 9분에는 수비가 걷어낸 볼을 김남일이 약 35m 지점에서 허를 찌르는 중거리 슛을 날렸으나 골라인을 통과하기 직전 브래드 프리덜의 손에 걸렸다. 집중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골이 터지지 않고 엎친데 덥친 격으로 황선홍마저상대 문전에서 헤딩하다 충돌, 오른쪽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는 등 불길한 기운을 직감하는 순간 결국 미국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존 오브라이언이 미드필드 중앙을 파고들다 문전으로 찔러주었고 한국 수비진의오프사이드 벽을 허물며 쇄도한 클린트 매시스가 지체없이 왼발 슛, 골을 성공시켰다. 왼쪽 윙백 이을용이 약간 뒤로 처져있어 오프사이드 벽이 허물어져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황선홍이 `붕대 투혼'을 발휘하면서까지 만회골을 노리던 한국은 전반 40분 페널티지역 안에서 상대 수비수 제프 어구스가 황선홍을 잡아채 넘어뜨려 페널티킥을얻었다. 전반을 1-1로 균형을 맞추며 후반전을 기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행운의 여신'은 한국을 외면했다. 이천수가 페널티킥을 차려는 듯 페널티 마크에 공을 내려놓았으나 키커로 나선것은 이을용이었고 이을용이 왼발로 찬 킥은 정확히 방향을 읽고 몸을 날린 미국 골키퍼 프리덜의 손에 막혔다. 한국은 후반 시작하자마자 맞은 결정적 골찬스를 설기현의 어설픈 슈팅으로 무산시켰다. 후반 4분 미국 골지역 오른쪽에서 골키퍼와 1대1로 맞선 설기현이 너무 정직하게 오른발 슛, 골키퍼 손에 걸렸다. 히딩크 감독은 후반 중반 황선홍 대신 안정환, 유상철 대신 최용수를 투입해 동점 및 나아가 역전까지 노리는 의지를 보였고 결국 안정환 `카드'는 후반 33분 귀중한 열매를 맺었다. 미드필드 왼쪽에서 얻은 프리킥을 이을용이 골문을 향해 띄웠고 수비와 함께 몸싸움을 벌이며 솟구쳐 오른 안정환이 절묘한 백헤딩으로 그물을 갈랐다. 한국은 동점골을 기화로 더욱 거세게 미국을 밀어붙였고 경기종료 직전 이을용이 상대 골지역까지 돌파에 성공한 뒤 무방비의 최용수에게 찔러주었으나 이를 실축,거의 다쥐었던 승리를 놓치고 말았다. ◆튀니지 1-1 벨기에(H조.오이타) 1승이 다급한 양팀의 전력은 벨기에가 앞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튀니지의 숨은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먼저 웃은 것은 전반 13분만에 선제골을 잡아낸 벨기에. 오른쪽 코너 부근에서 올라온 센터링이 문전을 지나 반대편으로 흘러갔고 이를페테르 반데르헤이든이 다시 골문 앞으로 띄웠다. 수비와 함께 점프해 위력적인 헤딩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헤르트 베르헤옌이 슈팅 대신 앞으로 살짝 떨궈주었고 이를 `골잡이' 마르크 빌모츠가 넘어지며 오른발 슛, 선제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승부는 4분만에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크 정면 약 25m 지점에서 얻은 프리킥을 라우프 부제뉴가 환상적인 왼발 감아차기 슛으로 벨기에 골문 오른쪽 상단 구석에 꽂아넣어 동점을 만들었고 나머지 73분간 그라운드에서 더 이상 골은 터지지 않았다. 벨기에의 우세로 펼쳐지리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튀니지의 측면돌파에 이은 기습공격이 위협적이었다. 오히려 벨기에보다 추가골의 기회를 많이 잡은 튀니지는 경기종료 직전 카이스고드반이 아크 정면에서 흘러나온 공을 오른발 아웃프런트 킥으로 강하게 찼으나 아쉽게 골키퍼 정면으로 날아갔다. 한편 튀니지 전력의 `핵'인 하센 가브시는 전반 22분 벨기에 바르트 호르에게깊은 태클을 시도, 옐로카드를 받아 경고누적으로 일본과 최종전에 결장하게 됐다. ◆포르투갈 4-0 폴란드(D조. 전주) 2-3으로 진 미국과의 1차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포르투갈이었다. 피구가 미드필드에서부터 집중 수비에 시달리면서도 날카로운 패스로 1골을 어시스트하고 직접 슈팅을 날려 아쉽게 골포스트를 때리는 등 되살아났고 파울레타의결정력도 눈부셨다. 포르투갈은 전반 14분 미드필드 오른쪽으로부터 가로질러 온 패스를 파울레타가골지역 왼쪽에서 수비 한 명을 제치고 오른발 땅볼 슛으로 골문에 꽂았다. 1-0의 불안한 리드로 전반을 마친 포르투갈은 후반 들면서 맹공을 퍼부어 3골을추가했다. 두번째 골이 터진 것은 후반 20분. 폴란드 올리사데베의 백패스 실수를 가로챈 포르투갈 후이 코스타가 오른쪽 측면을 파고 드는 피구에게 패스했고 코너 부근까지 치고 들어간 피구가 문전으로 찔러주자 파울레타가 넘어지면서 오른발 슛, 골을 낚았다. 파울레타는 후반 32분 센터서클 부근에서 날아온 패스를 받아 골지역 왼쪽까지파고 든 뒤 수비를 제치고 왼발 슛,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포르투갈은 전의를 상실한 폴란드 수비를 계속 공략한 끝에 후반 43분 후이 코스타가 마무리 골을 넣어 완벽한 승리를 일궈냈다. 한편 2001년 국제축구연맹(FIFA) 선정 `올해의 선수'인 피구는 전반까지는 페이스를 찾지 못했으나 후반 들면서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고 후반 22분에는 아크 왼쪽에서 절묘한 오른발 감아차기로 슈팅까지 날렸으나 아쉽게 골포스트를 맞고 나왔다. khoon@yna.co.kr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반= econ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