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일본 맞아?' 일본 열도에 잉글랜드 '광풍(狂風)'이 휘몰아치고 있다.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의 공동개최국이 일본이 아니라 영국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잉글랜드가 또 하나의 일본대표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현재 일본은 온통 잉글랜드 일색이다. 지난달 25일 일본 입국과 동시에 불어닥친 잉글랜드 바람은 데이비드 베컴(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짝사랑하는 일본 여성들의 집단 히스테리적 증상과 맞물리면서 커지기 시작, 7일 아르헨티나전을 계기로 마침내 열도를 강타했다. 일본의 운명이 걸린 러시아전을 하루 앞둔 가운데 8일 닛칸스포츠와 스포츠호치등 전문지는 물론 요미우리와 아사히 등 전국지까지 잉글랜드 승리 기사를 베컴의 환호하는 사진과 함께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방송은 뉴스시간마다 잉글랜드 관련기사를 내보내고 있고, 신문들도 잉글랜드 담당 기자를 늘려 베컴의 시시콜콜한 동정까지 보도하고 있다. 거리에도 잉글랜드의 열기가 느껴지고 있다. 7일 밤 삿포로시 번화가에는 약 4천명의 일본인들이 거리를 점령한 채 "잉글랜드 만세"를 외치며 폭죽을 터트리는 등 새벽 늦게까지 소란을 피우다 경찰의 만류로 자진 해산했다. 이 과정에서 훌리건 난동에 대비해 길목 곳곳에 미리 배치된 7천명의 중무장한 경비병력이 소란이 계속되자 무력에 의한 강제 해산을 경고, 하마터면 유혈사태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삿포로 경찰은 "다행히 훌리건 난동과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소란을 피운 군중의90% 이상이 일본 사람인 것으로 파악돼 앞으로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일본대표팀을 뒷전으로 밀어낸 잉글랜드 광풍의 중심에는 베컴이 자리잡고 있다. 베컴이 묵고 있는 숙소 주변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으려는 수천명의 여성팬들로 매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덩달아 부근 식당가가 때아닌 호황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경찰은 호텔 주위에 경비병력을 늘려 여성팬들의 압사와 집단 실신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나섰다. 베컴의 한 동료선수는 "베컴이 유부남인 데다 미소는 커녕 눈길도 주지 않는데 일본 여자들은 막무가내"라며 "더구나 나이 든 여자도 꽤 많아보여 모두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삿포로=연합뉴스)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