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도 도쿄(東京)에선 월드컵 열기를 느낄 수 없다. 아마도 이 거대 도시에서 월드컵이 열리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가장 가까운 곳이 차로 한 시간쯤 달려야 하는 요코하마(橫浜). 월드컵 개막 전부터 분위기 띄우기에 안간 힘을 써온 일본 언론들도 도쿄의 침묵(?)에 적잖이 당황하는 표정이다. 곳곳에 대형 전광판을 설치하고 고층 빌딩에 축구선수를 그려 넣는가 하면 주말마다 불꽃쇼를 벌이는 서울과 너무 대조적이다. 이같은 차이는 서울에서 도쿄로 날아간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다. 나리타(成田) 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들어서기까지 서울에서 흔히 보던 '월드컵' 깃발 하나 찾을 수 없다. 도쿄에서 여행가이드를 하고 있는 유한숙씨는 "월드컵 개막 후 달라진 것이라곤 도쿄타워의 불빛이 붉은 색에서 파란 색(일본대표팀의 유니폼 색깔)으로 바뀐 것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일본과 벨기에의 조별 예선 첫 경기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가 한창인 오후 7시. 기자는 도쿄 중심부를 이동중이었는데 교통혼잡이 극심했다. 운전기사에게 물었더니 "평소와 똑같다"고 말했다. 자국 경기가 있다고 해서 도로가 덜 막힌다는 건 먼 나라 얘기였다. 나스 쇼(那須翔) 월드컵 일본조직위원회(JAWOC)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유를 물었다. 그는 "개최도시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서울시가 훌륭한 경기장을 짓고 붐을 적극 조성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추켜세웠다. 벨기에와 비긴 후 일본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이에 대한 반응인지 다음날 도쿄 시내의 일부 기념품점에는 골을 넣은 스즈키와 이나모토의 유니폼이 진열대 앞쪽에 등장했다. 도쿄에서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려면 일본팀이 적어도 16강에는 올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