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숙원이 이뤄졌다' 4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의 밤하늘에 주심의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길게울려 퍼지자 한국축구대표팀 선수와 코칭 스태프들은 그라운드로 뛰어들어 승리를자축했다. 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첫 출전한 것을 포함, 통산 6차례의 도전에서 거둔 귀중한 첫 승이자 사상 처음 2라운드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한 6월 4일은 한국축구사에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제물포에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의 승무원들을 통해서였다. 1904년에는 서울의 외국어학교에서 축구는 체육과목의 하나로 채택됐고 2년 뒤서울 삼선평(오늘의 삼선교)에서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간의 경기를 처음으로 전국에 전파됐다. 1928년에는 최초의 축구조직인 조선심판협회가 창립됐고 29년부터는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경.평축구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며 축구는 암울했던 일제시대에 우리민족의 울분을 달래준 스포츠로 잡았다. 일제에서 해방된 뒤 1948년에는 대한축구협회가 새로 출범하면서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했고 같은 해에 런던올림픽 출전, 세계무대에 첫발을 디뎠다. 1954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의 회원국이 된 뒤 사상 처음으로 스위스월드컵에 진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세계축구와의 격차는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32년만에 본선에 출전한 이후에도 좁혀지지 않았다. 54년 2패, 86년 1무2패, 90년 3패, 94년 2무1패, 98년 1무2패. 2라운드 진출은커녕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던 한국축구의 초라한 성적표였다. 하지만 96년 일본과 공동으로 2002월드컵 유치가 결정되면서 한국축구는 전환기를 맞게 된다. 축구전용경기장 7곳이 새로 건립됐고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까지 사령탑으로 영입하면서 한국축구는 홈그라운드에서 세계의 강호들과 맞서기 위해차분히 준비해왔다. 마침내 4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그동안 흘렸던 땀이 결실을 보았고 이제한국의 선수들이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한국축구의 황금기를열게 됐다. (부산=연합뉴스) c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