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30일 대구월드컵경기장. 2001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 개막전에서 프랑스에 0-5로 패한 한국 선수들은 고개를 떨군 채 경기장을 빠져 나갔고 대신 성난 관중들의 고함만이 그라운드를 가득 채웠다. 상대가 98년 월드컵과 2000년 유럽선수권대회를 잇따라 제패한 세계 최강 프랑스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공격도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완패한 것은 용납될 수 없었기에 거스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은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26일 수원 월드컵경기장. 다시 관중들의 함성은 경기장을 가득 메웠지만 절망감에서 나오는 비난이 아니라 기쁨에 겨워서 나오는 환호성이었다. 관중들은 연신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고 경기장을 휘감고 도는 파도 응원은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됐다. 한국축구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었을까. 태극전사들은 지네딘 지단까지 가세한 '아트 사커' 프랑스와의 재격돌에서 1년전에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했던 모습을 완전히 털어버렸으며 오히려 월등한 체력을 앞세워 시종일관 대등한 플레이를 펼쳤다. 김남일, 유상철, 박지성이 버틴 미드필드는 지네딘 지단, 조르카에프로 대표되는 상대 공격의 시발점을 원천봉쇄했고 홍명보가 리드하는 수비라인은 '몇 수' 위인상대 공격수들에게 종종 돌파당했지만 어느 때보다 튼튼한 방어망을 구축했다. 상대에게 3골을 내 준 것은 상대의 기막힌 플레이가 통한 결과였을 뿐 수비의 조직력이 무너지지는 않았기에 크게 염두에 둘 부분은 아니었다. 탄탄한 미드필드를 바탕으로 펼친 공격도 완벽한 틀을 갖춰 언제 한국축구가 골결정력 부족에 시달렸던지를 의심케 했다. 히딩크 감독은 1년 전 프랑스에 대패한 뒤 "미드필드에서부터 뚫리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오늘 경기를 좋은 경험으로 삼겠다"고 밝혔었다. 이후 히딩크 감독을 포함한 선수단은 와신상담하며 훈련에 전념했다. 숱한 고난을 만났던 한국축구는 이제 무척 튼튼해진 허리와 잘 짜인 수비, 그리고 몇 단계 업그레이된 공격력을 갖춰 월드컵 16강진출의 희망을 갈수록 키우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su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