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미국월드컵대회 한국과 독일전에서 나온 홍명보의 30여m짜리 중거리 슛은 언제 봐도 축구팬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든다. 황선홍의 골로 1-3으로 추격한 후반 18분. 홍명보는 상대 수비가 헤딩으로 걷어낸 볼을 잡은 뒤 마테우스를 페인팅으로 따돌리며 그대로 오른발 슛을 날렸고 볼은 골키퍼 일그너가 손쓸 틈도 없이 오른쪽 네트 깊숙한 지점에 박혔다. 한국은 비록 2무1패로 예선탈락했지만 축구팬들은 가슴에 쌓인 아쉬움을 홍명보의 중거리 슛을 수십번 반복해 보면서 달랠 수 있었다. 또 한국의 월드컵 본선 1호 골로 기록된 박창선의 86멕시코대회 아르헨티나전 추격골도 25m짜리 중거리슛에서 터져 나왔다. 한국축구가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기 위해서는 중거리슛 성공률을 높이는게 절실하다는 지적이 축구계 안팎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이천수, 최태욱, 차두리 등 빠른 스피드를 갖춘 선수들을 앞세워 측면을 공략하고 안정환, 윤정환 등 패싱력과 슛을 겸비한 선수들이 아기자기한 패스로 중앙을 파고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거리 슛도 이에 못지 않다는 것. 중거리 슛은 골로 연결될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실패하더라도 상대수비수로 하여금 이에 대한 대비를 늦추지 못하게 해 부수적으로 측면공격이나 중앙돌파를 쉽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또 수세에 몰렸던 경기의 흐름을 공세로 바꿔놓는 역할까지 한다. 지난 21일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전반 37분 홍명보가 날린 기습적인 30여m짜리 중거리 슛은 상대 수비라인을 깜짝 놀라게 했고 이후 공격의 주도권을 쥐고 후반 동점골을 만들어내는 데까지 연결됐다. 거스 히딩크 감독도 중거리 슛의 중요성을 선수들에게 누누이 강조하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과감한 슛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안정환, 이천수 등 공격수는 물론 미드필더인 이영표, 김남일 등도 자주 중거리슛을 날리는 모습은 히딩크 감독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확성. 중거리 슛이 터무니없이 골문을 벗어나면 모처럼 잡은 기회를 무산시키는 데다 골문을 향해 쇄도하던 우리 선수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역기능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상대를 긴장시킬 수 있을 정도의 정확성은 갖춰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훈련기간 중거리 슛 능력을 더 가다듬는다면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서울=연합뉴스) su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