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가 최종일 선두로 나섰지만 그의 우승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최경주에게 4타 이내로 근접한 선수가 10명이나 되는데다 최경주는 미국 무대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최경주는 다른 선수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늠름한 모습으로 상승세를 지속했고,처음 경험한 챔피언조의 중압감도 그를 비켜갔다. 최경주는 최종일 4번홀에서 첫 버디를 잡아 중간 합계 13언더파가 됐으나 데이비드 톰스,크리스 디마르코 등 5명에게 1타차로 쫓겼다. 그러나 최경주의 샷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마이크 스포사가 8번홀 버디로 이날 처음이자 유일하게 공동 선두로 따라붙자 최경주는 7번홀(파4)에서 버디로 응수하며 아슬아슬한 선두를 지켰다. 최경주는 8번홀에서 티샷이 벙커에 빠졌으나 파를 세이브하는 위기관리 능력도 보여줬다. 전반까지 버디 2개로 중간 합계 14언더파. 여전히 1타차의 불안한 선두였다. 승부의 고비가 된 11번홀(파5·5백50야드). 최경주의 세컨드샷이 그린을 오버했고 러닝어프로치는 홀을 6m나 지나쳤다. 그런데 버디퍼팅이 홀 속으로 사라졌다. 추격자들과의 간격을 2타로 벌린 회심의 버디였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16번(파4·4백42야드)과 17번홀(파3·2백5야드). 16번홀에서 최경주는 드라이버샷을 3백18야드나 날린 뒤 홀까지 1백24야드를 남기고 피칭웨지로 세컨드샷을 했다. 볼은 그린 앞에 떨어져 구르더니 홀 가장자리에 붙어 버렸다. '이글성' 버디. 최경주는 이때 비로소 "우승이 눈앞에 아른거렸다"고 말했다. 중간 합계 17언더파로 추격자들과 3∼4타차가 되면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17번홀 칩인 버디도 환상적이었다. 5번아이언 티샷이 그린을 오버했으나 최경주가 웨지로 그린에지에 떨어뜨린 볼은 내리막을 타고 구르더니 홀 속으로 사라졌다. 18언더파. 쐐기를 박는 버디였다. 최경주는 핸디캡 1인 18번홀(파4)에서 티샷이 벙커턱 고약한 라이에 떨어져 보기를 범했으나 이미 승부와는 무관했다. 최경주는 우승 후 모자를 벗어 갤러리들에게 답례한 뒤 아내 김현정씨와 감격적인 포옹을 했다. 지난 98년 미국에서 첫 대회에 나간 뒤 무려 74개 대회 만의 쾌거였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