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의 마량포구는 별난 갯마을이다. 서해안에 자리했으면서도 바다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을 수 있다. 서해로 향하다 남쪽으로 살짝 꺾여 너른 비인만을 품고 있는 땅 끝에 위치, 당진의 왜목마을과 함께 연말연시의 해넘이.해맞이 명소로 손꼽히고 있는 것. 매년 이맘때면 또 하나의 명물로 도시민의 발길을 끄는 곳이기도 하다. 탱탱하게 알이 배긴 주꾸미가 그 주인공이다. 마을주민들이 힘을 합쳐 주꾸미를 내세운 축제판을 벌이는데, 올해엔 31일~4월13일 열나흐레간 계속된다. 5백여년 세월을 버텨온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169호)의 만개한 선홍빛 동백과 어울리는 고향의 맛, 그 순박한 잔칫상을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숏다리 낙지'라면 딱 알맞은 주꾸미는 3월 중.하순부터 5월이 제철. 이때가 되면 눈깔사탕 한두개 크기의 머릿속에 쌀알 모양의 하얀 알이 꽉들어차 맛이 최고에 달한다. "주꾸미는 서해안 전역에서 잡히지만 마량포는 특히 앞바다의 뻘과 모래가 적당히 섞여 주꾸미 살이 연하며 잔맛이 좋다"고 조광병 이장(52)은 자랑한다. 이곳에서 주꾸미잡이를 하는 주민은 10여명 정도. 1~2t 규모의 작은 배를 몰고 20~30분 떨어진 바다로 나가는데 일진이 좋은 날에는 한배에 1백kg은 너끈히 잡아올린다. 주꾸미를 잡는 방법이 재미있다. '소라방'이라고 부르는 소라껍질을 이용한다고 한다. 소라껍질에 구멍을 내 줄로 연결한 뒤 바다에 뿌려 놓으면 주꾸미가 알을 낳을 제집인줄 알고 들어 앉아 3~5일 뒤 걷어올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 '낭장망'이란 그물로 잡는 주꾸미와는 달리 산채로 잡아오기 때문에 한결 싱싱하다는 설명이다. 어구가 좀 달리지기는 했다. 조 이장은 "할아버지 때에는 겨우내 꼰 새끼줄을 썼고, 소라방도 국내에서 조달했지만 요즘에는 합성수지로 만든 줄에 중국에서 들여온 소라방을 엮어 쓴다"고 설명한다. 한 줄에 매다는 소라방의 갯수도 1만~2만개에 달할 정도로 주꾸미 개체수가 줄고 있는 추세란다. 이렇게 잡아올린 주꾸미는 축제기간중 갖은 요리를 해 내놓는다. 축제의 주무대는 이곳의 명물중 하나인 동백나무숲 아래 주차장부지에 꾸며지는데 활짝 벌어진 동백과 어울려 분위기를 돋운다. 85주의 토종 홑동백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동백숲은 5백여년전에 조성된 것. 당시 마량리 수군첨사가 뱃길의 안전을 위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계시를 받고 제단을 만들 때 함께 동백을 심었다고 전한다. "토종 홑동백은 위로 뻗은 가지가 옆으로 펴져 땅에 닿을 때까지 4백50년이 걸린다"는 이상지 계장(서천군청 문화공보실)의 말대로 하나 하나 가지를 쳐 둥그렇게 다듬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 안은 어두컴컴한 공간을 이루어 젊은 연인들이 손잡고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백나무숲 꼭대기에는 동백정이란 누각이 있는데 해넘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축제가 시작되기에 앞서 인근에 해양박물관(대표 이장복)이 문을 여는데 한번 들려볼만 하다. 서해안의 어패류와 바다물고기의 생태를 볼 수 있다. 인근 갯벌에서의 생태체험과 독살(원시어로방법)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어서 아이들이 좋아할 것으로 보인다. 서천=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