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제봉 대구CC 회장(84)은 한국 골프 발전에 기여한 공로에 비해 일반인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섬유 관련 무역업으로 큰 돈을 번 우 회장은 지난 1965년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등과 함께 뉴코리아CC를 건설,초대 이사장을 지냈으며 72년에는 고향인 대구에 대구CC를 건설했다. 우 회장이 대구CC를 만들게 된 데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가 컸다. 박 대통령은 "대구는 3대 도시인데 앞으로 경제가 발달하면 골프를 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라며 수차례 골프장을 건설토록 권했다. 당시에는 골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수도권지역 골프장도 적자에 허덕거리던 시절이었다. 대구로 내려간 우 회장은 대구·경북지역의 자동차 보유자가 5백명이 채 안된다는 것을 알았으나 골프장 건설을 밀어붙였다. 어렵게 건설하고 나자 박 대통령이 찾아와 제일 먼저 회원권을 구입했다. 당시 회원권 값이 50만원이었는데 박 대통령은 1백만원을 주고 회원권을 샀다. 50만원은 당시 방 2칸짜리 괜찮은 집을 구입할 수 있는 거액이었다. 지금은 박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 명의로 돼 있지만 박 대통령은 대구CC '회원 1호'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장관들에게도 대구CC 회원권을 구입토록 지시해 김종필 현 자민련 총재도 구입했다고 한다. 우 회장은 지난 84년부터 8년간 대한골프협회 부회장을 지낸 뒤 94년에는 대구·경북지역 기업인들과 함께 5억원을 모아 순수 골프장학재단인 송암법인을 설립,'송암배 아마추어골프대회'를 만들었다. 이 대회 여자부 초대 챔피언이 바로 박세리였다. 박세리가 유성CC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면,김미현은 대구CC에서 성장했다. 김미현이 어렵던 시절 우 회장은 훈련비용을 대주면서 편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김미현은 지금도 미국에서 돌아오면 우 회장을 방문해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50년대 말 골프에 입문한 우 회장은 배용산·손창렬 프로를 사사했으며 당시 최주호 우성그룹 회장,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고 단사천 한국제지 회장,고 김정렬 국무총리 등과 자주 어울렸다. 우 회장은 구력 30여년 만인 88년 대구CC 서코스 5번홀에서 생애 첫 이글을 잡았으며 홀인원은 3년 뒤에 같은 코스 6번홀에서 유일하게 기록했다. 81세 때인 지난 99년에는 골퍼에게 가장 영예롭다는 '에이지 슈트'(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그보다 적은 스코어를 치는 것)인 81타를 기록해 나이가 들수록 원숙해지는 골프를 즐기고 있다. "10m가 넘는 롱퍼팅이 쑥쑥 들어갔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우 회장은 매일 아침 카트를 타고 코스를 한 바퀴씩 돌며 1주일에 1∼2회 라운드를 할 정도로 건강하다. 지금도 라운드 전날에는 소풍을 앞둔 어린이처럼 마음이 설렌다고 한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