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불도 다시 보자' 봉태하(41·스포월드)가 불혹을 넘긴 나이로 9년 만에 국내 프로골프대회 강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동료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봉태하는 89년부터 93년까지 5년연속 상금랭킹 10위에 들 정도로 국내 톱프로였다. 그러나 94년 소속사를 바꾸면서 볼까지 바꿨는데 이 볼이 실험용 볼이었다. 거리가 30야드 가량 줄었는데 당시는 볼 탓인지 몰랐다고 한다. 자신의 스윙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만 알고 무리하게 연습에 몰두했다. 그러다보니 팔에 엘보가 왔고 허리부상까지 겹치며 중위권 선수로 전락했다. "골프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그동안 얼마나 가혹한 인고의 세월을 보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우승의 꿈은 한 아마추어골퍼의 조언에서 시작됐다. 강원오픈 2주 전에 열린 익산오픈에서 커트탈락한 그는 바로 서울에 올라가기가 부끄러워 유성CC로 갔다. 그날 저녁 예전에 알고 지내던 분을 우연히 숙소에서 만났다. 그 사람은 봉 프로가 잘나가던 시절 알고 지내던 분이었다. 골프얘기로 담소를 나누다 봉 프로는 "퍼팅이 안돼서 죽겠다"고 털어놓았다. 아마추어지만 '싱글'의 실력을 갖고 있던 그 사람은 퍼팅을 한번 해보라고 했다. 봉 프로가 연습퍼팅을 해보이자 그 사람은 "예전에는 손목이 안꺾였는데 왜 꺾이지.자꾸 볼을 쫓아가서 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강원오픈 대회 전날 봉 프로는 연습그린에서 그 사람이 얘기해준 대로 시험삼아 퍼팅을 해봤다. 그랬더니 자세는 불안한데 볼이 정말 제대로 굴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 프로는 이런식으로 밤늦게까지 연습을 했다. 대회 첫날 1번홀에서 1.5m 버디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퍼팅을 하려는 순간 다시 옛날 버릇이 나오면서 버디를 놓쳤다. 다음홀에서는 6m 버디 찬스였다. 이번에는 전날 연습했던 식으로 퍼팅을 해봤는데 그대로 홀에 빨려들어갔다. 이때부터 새로운 퍼팅방법으로 대회에 임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퍼팅이 먹혀들어갔다. 오죽하면 퍼팅의 귀재라는 최상호 프로가 대회 직후 "너 퍼팅 잘한다"고 칭찬했을 정도였다. 국내 최강인 최광수 프로와는 가족끼리도 친한데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최 프로에 비해 자신이 초라해보여 가족들에게 미안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체면을 세우게 돼 너무 기쁩니다. 자식들도 이제 아빠를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는 "이제는 골프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겠다"며 내년에 달라질 자신의 모습을 기대해달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