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안양CC에서 한국오픈이 열렸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이동출 프로는 68타를 쳐 당시 코스레코드를 세웠다.

그런데 대회가 끝나고 캐디와 그린키퍼가 이 프로의 스코어가 조작됐다는 얘기를 했다.

70타를 쳤는데 68타를 쳤다고 속였다는 것이다.

안양CC는 골프장의 코스레코드가 조작됐다면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철저한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헌데 일이 묘하게 꼬여갔다.

이 프로는 기록조작이 탄로날 것 같자 나를 걸고 넘어졌다.

내가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

서울CC에 근무하던 이 프로는 나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최재봉 서울CC 전무이사를 등에 업고 나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서울CC에 자주 라운드하러 나온 이병두 당시 중앙정보부차장을 끌어들여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에게까지 보고했다.

나는 평소 친분이 있던 허정구 당시 삼양통상 사장으로부터 ''중앙정보부에 불려가면 죽으니까 미리 어떻게 좀 해보라''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됐다.

나는 부랴부랴 서울 성북구 삼선교 부근에 있던 김형욱 부장의 한옥집을 어느날 아침 일찍 찾아갔다.

김 부장은 출근을 하려던 중이었는데 내가 인사를 하니까 인사도 안받고 바로 출근해버렸다.

몹시 화가 난 표정이었다.

산천초목도 벌벌 떨게 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김 부장의 감정을 상하게 했으니 억울함에 앞서 눈앞이 캄캄했다.

다음날 아침 다시 김 부장을 찾아갔다.

김 부장은 나를 보더니 아무 말없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30분 후 출근준비를 하고 나온 김 부장은 사랑채로 나를 불렀다.

김 부장은 특유의 목소리로 "들어와 봐! 들어오란 말이야"라고 소리쳤다.

커피를 시킨 김 부장은 "어떻게 된 거야? 사실대로 얘기하라우"라며 특유의 이북 사투리로 물었다.

나는 결코 허위사실을 유포한 일이 없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김 부장은 내 설명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된 듯 "조사해보겠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이어 어디서 선물받은 듯한 최고급 ''벤호건'' 골프채를 쓰라며 나에게 주었다.

그 이후 사건내막을 알아본 김 부장은 내 말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됐고 나를 더욱 신임하게 됐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