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과 잡초 인생의 대결'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대회에서 맞붙게 된 프랑스의 로저 르메르(60) 감독과 일본의 필립 트루시에(46) 감독은 모두 프랑스 출신이지만 너무나 다른 축구인생의 길을 걸어 왔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르메르가 스타 플레이어로 구성된 프랑스팀을 그대로 물려 받아 탄탄대로를 걸어 왔다면 트루시에는 아프리카 지역을 전전하며 감독 경력을 세워왔고 보수적인 일본축구계와 좌충우돌하며 버티어 온 것. 우선 르메르는 선수 시절 부터 스타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다. 프랑스 축구의 명문 클럽 CS 세당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르메르는 FC 낭트, AS낭시, RC 랑스 등에서 부동의 수비수로 자리를 잡으려 '올해의 프랑스 선수'에 3차례나 선정됐다. 그는 68년부터 71년까지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6개의 우승컵을 프랑스에 안겨줬고 랑스, 파리, 스트라스부르 등에서 사령탑을 맡으며 순탄한 지도자 생활을 계속했다. 르메르가 대표팀을 맡게 된 것도 행운이었다. 98년 월드컵대표팀을 세계정상에 올려 놓은 에메 자케 감독이 우승 뒤 사임하자 르메르는 호화군단의 프랑스팀을 그대로 인수했다. 기량이 절정에 오른 프랑스는 지난해 유럽축구선수권대회마저 제패하면서 르메르도 힘들이지 않고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르메르 자신 조차도 "프랑스가 강한 이유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대표팀이 수년간 멤버의 변화없이 운영된 덕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트루시에 감독은 76년 프랑스 2부리그에서 별 볼일 없는 선수로 뛰다가 90년 아프리카의 코트 디부아르팀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았다.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로코 등의 클럽팀을 전전하면서 탁월한 조련술을 인정받아 97년 나이지리아대표팀을 맡았고 98년에는 남아공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켜 2무1패를 기록, '하얀 마술사'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가 현재의 일본 대표팀을 맡은 것은 98년 9월. 당시 일본축구협회는 프랑스의 아르센 웽거(현재 잉글랜드 아스날 감독)와 접촉했으나 거절당하자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트루시에를 택했다는 소문도 있다. 트루시에는 일본팀을 맡은 뒤 치밀한 훈련으로 팀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 놓았고 99년 세계청소년대회 준우승, 2000년 아시안컵 우승 등을 이끌었다. 그러나 트루시에는 이같은 성과를 거두고도 언제나 축구협회 및 언론과 충돌을 빚었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한 트루시에는 사사건건 간섭하는 협회에 대해 "사퇴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언론으로부터는 "조련 능력을 뛰어나지만 큰 경기에서 임기응변이 부족하다"는 질책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트루시에는 이 때마다 보란 듯이 커다란 성과물을 안겨다 주었고 이제는 그가 2002 월드컵까지 대표팀을 이끌 것이라는 데 대해 의심하는 일본인은 없다. 이처럼 서로 대조적인 길을 걸어 온 르메르와 트루시에가 10일 열리는 결승전에서 어떤 전술 대결을 펼칠 지 일본인들은 물론 전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요코하마=연합뉴스) c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