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병철 회장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수요회''일 것이다.

이 회장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주일에 세번 안양골프장을 찾았다.

수·금·일요일로 이틀에 한번꼴로 라운드를 했다.

이 회장의 티오프 시각은 고정돼 있었다.

수요일과 금요일엔 낮 12시30분,일요일엔 오전 10시에 정확히 티오프했다.

수요회란 수요일에 모여 라운드를 하는 모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회원은 20명 안팎이었다.

이 회장을 포함 신현확 국무총리,민복기 대법원장,유창순 국무총리,안희경 변호사,김진만 국회부의장,신용호 교보 회장,권철현 연합철강 회장,박태원 경기도지사 등 당시 내로라 하는 인사들로 구성됐다.

이 회장은 김진만 부의장,신현확 총리,권철현 회장,박태원 지사와 같은 조로 플레이하곤 했다.

그런데 이 회장은 플레이할 때 반드시 내기를 즐겼다.

그것도 타당 1천원짜리 내기였다.

액수는 적으나마 내기골프를 즐긴 것은 ''골프를 적당히 하는 것을 배제하고 플레이의 묘미를 돋우기 위해서''였다.

이 회장의 이런 성격을 잘 아는지라 직원들은 미리 3만∼5만원을 천원짜리로 바꿔서 플레이 시작 전 드리곤 했다.

물론 수요회 멤버들은 라운드 후 스코어카드를 보고 정산을 했다.

이 회장은 비록 천원짜리 내기였지만 동반자들보다 잘 쳐 ''따는 날''은 좋아하고 기뻐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대한민국 제일가는 갑부였지만 내기에서 단 돈 몇푼을 땄다고 하여 기뻐하는 모습을 보곤 ''사람의 심정은 갑부나 범부나 똑같구나''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이 회장과 같은 조로 플레이한 모기업 회장이 스코어가 좋지 않아 1만∼2만원을 잃은 듯했다.

라운드 후 이 회장이 "돈을 잃게 될 것 같은데 마음이 상합니까?"라고 묻자 그 회장은 대뜸 "돈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회장이 다시 "재산이 몇백억이라는데 뭘 그럽니까"라고 말하니 그 회장 왈 "아닙니다.몇백억이 아니라 1백80억원 있습니다"라고 말해 좌중이 폭소를 터뜨렸다.

여하튼 이 회장과 수요회 멤버들은 작은 내기를 통해 모임의 끈을 단단히 조였던 듯하다.

이 회장 골프의 특징은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홀을 공략할 때 과욕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

또 골프규칙을 철저히 준수했는데 그것은 이 회장이 예약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것과 더불어 이 회장의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회장은 수요회외에는 여타 골프모임에 관여하지 않았다.

아무리 높은 데서 부킹청탁이 들어와도 "내 소관이 아니다.담당자에게 말해보라"며 거절했다.

그러니 골프장 직원들은 감히 부킹청탁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헤드프로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골프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