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병철 삼성회장은 안양골프장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건설에 앞서 일본의 유명 골프장을 다 돌아보고 미국이나 유럽의 명문 골프장에 대한 문헌을 뒤져가며 그 장점을 따서 가장 이상적인 설계를 하려고 노력했다.

설계는 일본의 명문 골프장인 스리헌드레드(300)CC의 이사장이고 일본 상공회의소 회장인 고토 노보루씨에 의뢰,그의 부하 임원인 미야자와 나가히라씨가 했다.

이 회장은 나무 한 그루,풀 한 포기의 배치에도 온 정성을 쏟았다.

이 회장은 안양골프장을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고 쾌적한 골프장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또 골퍼들이 모이는 장소로 일정한 룰과 질서가 있고 예절바른 곳이 되도록 골프장 운영에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

이 회장은 가끔 예고도 없이 골프장을 방문,시찰한 뒤 잔디 관리가 잘못돼 있거나 시설물 청소상태가 엉망일 때는 직원들을 호되게 나무라곤 했다.

이 회장은 골프채 수집을 취미로 갖고 있었다.

훗날에는 골프채를 무려 5백여개 갖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1백년 된 골프채도 있었다.

이 회장은 그러나 이렇게 수집한 것을 남에게 주기 좋아했다.

열심히 일하는 회사 임원들에게 골프화나 골프채를 자주 나눠줬다.

나에게도 선물받은 골프채를 여러개 줬다.

골프채와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있다.

이 회장은 드라이버 선물을 많이 받았는데 드라이버를 들고 온 사람마다 "이 드라이버는 지금보다 10야드 이상 더 나가는 신병기"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나중에 "내가 30년도 넘게 골프를 쳤는데 신병기의 효과가 사실이라면 난 벌써 파4홀 정도는 거뜬히 1온을 해야 한다.

매번 10야드씩 더 나갔을테니까 말이야.다 쓸데없는 얘기야…"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혼마 사장을 만난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그때 혼마 사장은 ''골프채도 옛 명검과 마찬가지로 만든 사람의 혼이 들어가지 않으면 명품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골프채 하나를 만드는 데도 최고를 추구하는 장인정신이 명품을 낳게 한다.

이는 골프채에 그치지 않고 사업을 포함한 모든 인간활동에 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건강을 위해 골프를 시작했다고 한다.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 푸른 잔디를 밟으며 맑은 공기를 쐬는 것 자체만으로 골프가 운동으로서 최고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때로는 골프장이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곳이 되기도 했고 중대한 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장소로도 애용됐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