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오프 시간에 임박해 골프장에 도착,쏜살같이 라커룸으로 달려가 옷 갈아입고 얼굴에 뭘 좀 찍어 바르고,신발 챙겨 신고 나오면,캐디들은 벌써 준비를 끝내고 티오프를 채근하고 있다.

그런데 나 같은 초보자일 경우 이 캐디들의 조언과 친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았다.

지난 겨울 제주에 있는 오라골프장에서 라운드할 기회가 있었다.

제주도에선 바람이 가장 잔잔한 골프장이라는 평판이 있고,맑은 날엔 바다도 바라보이고,주변 경관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특히 제주도 골프장의 그린일 경우 내 눈에는 분명 내리막 코스인데,캐디는 오르막이라는 조언을 해줄 때가 많았다.

그 조언을 하찮게 여기거나 반신반의해서 고집대로 퍼팅을 했다간 십중팔구 실책을 범하고 만다.

내 스윙 자세를 몇 차례 관찰하던 그 골프장의 캐디가 내게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라운드할 때,남 몰래 입술에 립스틱을 살짝 바르고 나서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라운드를 끝내고 라커룸으로 돌아가서 확인해 보아 입술에 발랐던 립스틱이 양쪽 어깨짬 옷깃에 모두 옮겨 묻었으면 그 날은 완벽한 스윙을 한 것이고,그렇지 않으면 안일한 스윙으로 일관했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라는 말이었다.

여성 골퍼들과 동반해서 라운드했던 실전 경험에서 얻어낸 지혜임이 분명했다.

그런 캐디와 라운드에 들어가서 7번홀을 채 돌지 않았을 때,더 이상 라운드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단념하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왔고,비에 젖은 골프채를 시내에 잡아둔 숙소의 객실까지 들고 들어갔다.

이튿날에 라운드를 계속하자면,말려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골프채 가방을 열었을 때,나는 놀라고 말았다.

골프채 13개 모두를 깨끗한 신문지로 꼼꼼하게 포장해 습기가 닿지 않게 차곡차곡 넣어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얼굴도 기억에 삼삼한 그 캐디를 나는 잊지 못한다.

jykim@paradi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