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만난 것은 꽃피는 봄날이었다.

사람들은 그 만남을 두고 ''머리 얹는 날''이라고 했다.

첫 만남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늑골이 저리도록 연습하기도 했다.

그리고 1년,그와의 시간을 정리해보고 싶다.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새벽이고 밤이고 틈나는 대로 연습했다.

하지만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밀고 당기기의 달인,참 콧대 높고 영특한 상대였다.

17번홀까지 차갑게 외면하다가도 18번홀에서 포기하려하면 따뜻하게 빈틈을 보여줬다.

가까워지는가 싶으면 멀어지고,멀어지는가 싶으면 가까워지고….

그와의 짧은 만남에서 세상엔 완벽한 소유와 정복이 없다는 걸 배웠다.

얼마 전엔 속상한 일도 있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그가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사치와 과소비를 이야기할 때 잊지 않고 그를 거론한다.

그가 좀 비싸게 굴기는 하지만 그건 그의 외면에 불과하다.

방송을 보며 ''저것이 전부는 아닐텐데…''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저리기도 했다.

나는 진정으로 그를 좋아하나 보다.

그에게 깨끗하게 배신당한 적도 있다.

며칠 전 그를 두고 라이벌과 결투를 벌인 날이었다.

그는 야속하게도 고작 그를 12번 만나러 온 다른 여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60번도 더 만난 나를 두고 말이다.

오랜 정(情)도 그 앞에선 부질없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게으른 나를 탓할 뿐 그를 탓하진 않았다.

끌려다니는 사람의 일반적인 증상이다.

지난 1년간 무수히 당하면서 그를 떨쳐 버릴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쩌다 잘 맞은 ''한 방의 추억''이 나를 묶어두곤 했다.

그때 나던 경쾌한 소리가 귓전에 울렸고 그 촉감 때문에 손이 가려워졌기 때문이다.

번번이 실망하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좋은 상대다.

그가 머무르는 풍경에는 신선한 바람과 상쾌한 풀내음을 동반했고 나태해질 수 있는 생활에 ''타수를 줄여야한다''는 탱탱한 긴장감을 주지 않았던가.

지금 이렇게 감상적으로 그를 떠올리는 건 겨울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너무 찬바람이 불면 그를 만나러 가기 힘들다.

사람들은 ''납회''를 한 후 겨울 동안 그를 멀리한다.

이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난감하고 가슴이 휑해진다.

어느 연습장 한 구석에서 봄날의 재회를 기다려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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