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법정스님 말씀이다.

집을 이야기할 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하면 어른들은 못 알아듣지만 ''1억원짜리 집을 보았어''라고 하면 그제서야 집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골프 역시 어른의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회원권은 집 한 채 값이고,그린피도 비싸고,타이거 우즈와 박세리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인 운동….

숫자에 입각한 골프는 ''값비싼,사치스러운''으로 일축되게 마련이다.

두명의 골퍼가 있다.

한명은 나처럼 숫자에 민감한 어른이다.

그는 그린피를 누가 계산해야 할 것이며,내기는 얼마짜리를 해야 하고,목표 스코어는 얼마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

몸은 골프장을 향하고 있지만 머리속은 온통 전자계산기다.

또 한명은 숫자를 빼고,골프 그 자체만을 떠올린다.

몸은 소풍가는 것처럼 마냥 들떠 있다.

골프를 통해 친구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작은 볼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겸손''의 의미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단내나도록 맑은 공기를 선사해주는 자연에 대해 감사한다.

숫자로 접근한 골프는 언제나 스트레스이고 낯설 수밖에 없다.

18 홀 다섯시간은 은밀한 협상을 완료하는 시간이고 그린피는 그 대가 지불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동반자에 대한 이해,자신에 대한 이해,자연의 섭리에 대한 이해의 시간이라 생각하면 그 가치는 달라진다.

행복과 만족의 가치를 평가할 때 절대로 숫자가 가장 앞선 지표가 돼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값싼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불행해야 하고 3백만원짜리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얼마 전 골프를 포기하겠다는 선배 M의 이야기를 접했다.

그 좋아하던 골프를 포기하는 이유가 단지 스코어나 비용의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그 숫자적 상실감 이전에 골프를 통해 배운 무수한 가치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으면 한다.

포기하려는 선배 M과 ''골프는 사치스러운 운동 아니냐''고 e메일을 보내온 독자 A에게 이 일기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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