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있는 다섯 명의 골퍼,네 명 한 팀을 맞춰야 할 경우 단골로 빠지게 되는 것은 나다.

이번 주말에도 나만 쏙 빼놓고 골프장에 가기로 한 네 명의 남자는 신이 나 있었다.

왜 나를 빼놓는가.

이유는 뻔하다.

레이디 티까지 걸어가는 걸 기다려야 하고,또 그들은 두 번만에 그린에 올릴 거리를 나 혼자 세 번,네 번에 치니….

그 기다림이 번거롭고 또 내기라도 할라치면 박진감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들이 골프장에서 즐기는 동안 갈 곳 잃은 나는 극장으로 향했다.

무협영화였다.

여리고 청순한 여자 무사가 남자 무사들을 물리치는 장면이 펼쳐졌다.

거구의 남자 무사들이 여인의 칼끝 하나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데….

골프장에 함께 못간 내 분풀이를 그 여자 무사가 다 해주는 듯했다.

여자를 얕보지 말라.

큰코 다친 남자들 많다.

얼마 전 한 대회에서 만난 선배언니도 그랬다.

키는 1백55㎝ 정도에 체중은 40㎏도 채 안돼 불면 날아갈 듯한 가녀린 체구였다.

하지만 그 하늘하늘한 몸에서 나오는 샷이 어찌나 매섭던지….

거리를 압도하는 것은 물론이고,정확하기가 또한 칼같았다.

결국 한 조가 된 싱글 핸디캐퍼인 남자 골퍼들조차 홀마다 무릎을 꿇어야 했다.

남자 무사들이 오로지 힘 하나만 믿고 덤빌 때,여자 무사는 춤추듯 하늘하늘한 권법으로 그 경직됨의 허를 찔러댔다.

남자 동반자가 거리를 의식한 나머지 번번이 볼을 산으로 보낼 때,이 여자 고수는 언제나 페어웨이를 지켰다.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목표지점만을 향해 날아가는 볼은 칼처럼 정확했다.

1백타대에서 서성이던 평범한 여자 골퍼를 매서운 싱글 핸디캐퍼로 만든 비결.

한번 연습장에 가면 볼 1천개를 마다하지 않는 독함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귀족의 딸인 여자 무사와 가녀린 여자 고수.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지배하는 여인들이다.

''아,나도 언제 그들처럼 무림을 정복할 수 있을까?''

영화 상영 내내 연습장 가서 칼 가는 생각뿐이었다.

고영분 방송작가 godoc100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