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방송작가>

올 시즌 강력하게 떠오른 라이벌 D가 있다.

머리 올린 지 몇 달 안됐지만 쌩쌩 바람을 가르는 아이언 샷이 위협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굿 샷은 가끔 나올 뿐 대부분이 미스 샷이라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런 D가 얼마전 1백타는 물론 90타 벽까지 깨 88타를 기록하고 만 것이다.

D의 급성장,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만약 내가 8월23일까지 1백타를 깨지 못하면 채를 다른 사람에게 줘버리겠다"며 목표 시기를 공공연히 밝히고 다녔다.

아들 돌인 8월23일에 날짜를 맞춘 구체적 목표가 세워지자 D는 자신의 골프를 세밀하게 점검하기 시작했다.

쌩쌩 나는 아이언 샷에 집착했었는데 그런 욕심이 오히려 미스 샷을 부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선 ''거리를 줄이더라도 힘빼며 천천히''를 구사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더니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라이벌의 성취담은 발전 없는 내 골프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올 시즌엔 90타를 깨야지,티잉그라운드에 서면 그저 멀리 보내야지,그린에 올라서면 컵 안에 집어넣어야지''라는 막연한 골프를 치던 나.

하지만 그런 막연함은 1년이 지나도록 내 골프를 제자리에 머물게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나 역시 막연한 목표에서 벗어나 구체적 설계를 하기 시작했다.

드라이버 샷을 하면서도 ''멀리 보내겠다''가 아니라 ''세컨드 샷을 하기 편한 장소로만 보내겠다''고 생각했고 그린에 올라가면 ''한번에 컵에 집어넣겠다''가 아니라 ''컵 1m 반경에만 넣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 세밀한 목표는 내 골프를 정교하게 만들어주었다.

턱없이 커서 정확하지 않았던 스윙은 간결하게 줄어들었고 컵인을 바로 노리던 퍼팅은 근처에 붙이겠다고만 생각하니 편해졌다.

결국 몇번의 라운드에서 조금씩 타수가 줄어들더니 최근에는 보기 8개에 파 1개라는 경이적인 결과를 낳았다.

D와 내가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너무 거대하지 않은,한샷 한샷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 아닐까.

골프를 이제 떡 주무르듯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나는 몹시 몸이 근질거린다.

사무실에서도 저절로 그립과 백스윙 동작이 나오고….

예전에도 이런 증상이 있었지만 그때는 막연한 호감이었을 뿐 요즘처럼 손과 발이 구체적으로 근질거린 적은 없었다.

godoc100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