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아마추어골퍼들은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골프볼이 게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른다.

간략하게 볼의 변천사.공법.특성등을 설명한다.

오늘날 골퍼가 옛날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좋은 점수를 내는 것은 골프용구의 발달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고무질 볼의 등장은 고대와 현대골프사를 갈라놓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1200년대말 독일인들은 너도밤나무 느릅나무등을 깎아 만든 볼로 경기를 했고 홀랜드인은 가죽에 소털을 넣어서 사용했다.

1500년대 스코틀랜드인들이 가죽속에 거위털을 넣어 경기를 함으로써 "페더볼" 시대가 열린다.


1) 페더(feather)볼 시대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나무로 깎아 만든 볼은 지역에 따라 1700년대까지 사용됐다.

1500~1600년에 가죽으로 싼 볼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아직도 그 시대의 볼을 발견한 적이 없어 그 속에 새털이 들어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1743년부터 페더볼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는데 숙련된 기술공도 하루 5~6개밖에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리 견고하게 제작해도 두 라운드를 못넘기기가 일쑤였고 물에 젖으면 모양이 일그러지는 일이 많았다.

이 볼의 평균거리는 1백80~2백20야드.1836년 세인트 앤드류대학 프랑스인 교수 샘 매시욱스의 3백61야드가 최고기록으로 남아있지만 대회당시 땅이 조금 얼어 있었고 뒷바람도 불었다고 한다.


2) 구타페르카(the gutta-percha)볼 시대

야생식물에서 추출된 고무질로 1845년께 만들어진 이 볼은 페터슨이라는 목사가 석상을 인디아에서 세인트 앤드류대학으로 옮길 때까지 깨지지 않도록 부착한 구타페르카에서 착상을 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다 자신이 발명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인정을 받기에는 기원이 확실치 않다.

이 볼은 1848년 런던에서 열린 블랙히스라는 대회에서 공식 등장했다.

그것을 계기로 침체에 빠졌던 골프계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싼 가격과 긴 수명,일정한 포구선과 그린위에서의 정확도를 가진 이 볼은 물에 젖어도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순식간에 모든 골퍼들이 선호하게 됐다.

최대비거리 기록은 1892년 당대 최고의 장타자인 에드워드 블랙웰이 세인트 앤드류스GC에서 세운 3백66야드다.

이는 비공식이었고 1894년 브리티시오픈때 롤랜드의 2백35야드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3) 고무(rubber)볼 시대

1898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거부 코번 해스켈이 고안한 고무볼의 등장은 골프클럽의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준,골프계의 혁명적 일이었다.

부드러운 고무볼은 감나무소재의 우드헤드를 만들게 했고 손으로 두드리던 아이언은 점차 기계화될수 있었다.

아이언의 헤드에 여러개의 직선홈을 파내 볼이 떠있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비거리도 증대돼 그때까지 생각지 못했던 "스핀"(spin)이란 단어도 생겼다.

이 볼은 구타페르카볼보다 많은 탄력때문에 그린위에서 조절이 힘들었으나 스핀으로써 볼을 컨트롤하였고 피칭웨지의 발달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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