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작가 >

밑빠진 독에 물붓던 콩쥐의 심정이 이랬을까?

필드행을 앞두고 연습장을 찾은 나는 씩씩거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내가 겨울동안 채를 놀린 것은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아지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 닦아놓은 기본기는 되살아나야 하는 것 아닌가?

마치 처음 골프채를 잡은 사람처럼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에 스스로 화가 났다.

"내가 골프에 공들인 만큼 책을 썼으면 책이 몇권이었고,영어회화를 익혔으면 미국인 뺨을 치고 있었을거다"라는 생각이 들며 아무리 공들여도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는 골프를 포기하고 싶었다.

골프를 포기한 한 중년신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몇 명이 모여 한 클래스로 이루어지는 골프 교실이었는데,유독 그 레슨과정에 취미를 못붙이던 한 신사였다고 한다.

열심히는 하는 것 같은데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던 그 신사는 어느날 조용히 티칭 프로를 찾아왔단다.

골프레슨을 그만 두겠다고 말하려 온 그 신사의 손에는 책 몇권이 들려있었다.

"자존심이 상해요. 제가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더는 괴로워서 못치겠어요. 저는 그렇게 모자란 사람이 아니거든요.
보세요. 이건 제가 집필한 책들이라구요"

평생 남한테 져본적 없고,뜻한 것은 모두 이루며 살아온 그 신사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은 것이다.

골프만 못칠 뿐이지 다른 것은 다 잘한다는 말을 남기며 그 신사는 레슨 교실을 떠났다고 한다.

그것이 내가 들은 유일한 포기의 예이다.

한 재벌 그룹 회장님도 그랬다하지 않는가?

살아생전 힘과 돈으로 해결 안되는 것은 자식농사와 골프 뿐이었다고.

해도해도 끝이 보이지 않고,그것을 아무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는 골프.

그 때문에 골프앞에서는 포기,아니면 오기가 있을 뿐인가 보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포기하는 사람보다 이 악물고 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것이 더 즐겁기 때문이다.

나역시 포기를 오기로 고쳐먹으며 연습장을 나섰다.

포기하기에는 지금까지 내가 쏟은 공과 손때묻은 골프채가 너무 아깝고,또 이글도 아직 안잡아 봤고...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독을 대신 받쳐줄 두꺼비도 없고,포기도 싫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물빠지는 속도보다 더 열심히 물을 퍼붓는 콩쥐의 오기만이 있을 뿐이다.

< godoc1003@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