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체리힐 G.C.(덴버)에서 열린 U.S.오픈은 세계 골프의 거장 벤 호건,
당대 최고의 골퍼 아놀드 파머, 아마추어 잭 니콜로스의 대결이었다.

대회 마지막날, 파머가 65타의 스코어로 퍼팅을 끝내고 모자를 하늘에
집어던지며 기뻐하고 있을때, 호건은 라커룸에 앉아서 "내가 지금 어떤
애하고 36홀을 끝냈는데 이 경기는 그 애가 적어도 10타차로 승리를 했어야
했다"고 했다.

파머에게 2타차로 져 2위가 된 니콜로스에겐 그 대회는 매우 진기한
순간이었다.

그날 우승자인 파머도 직접 보았고, 세계 골프를 지배했던 노장 호건을
섬뜩하게 했던 니콜로스 그의 섬광은 예사롭지 않았다.

잭 니콜로스(1940~), 오하이오주 콜롬버스에서 태어나 10세에 골프를 시작해
생애 첫9홈을 51타의 경이로운 스코어로 장식하며 앞날을 예고한다.

비교적 여유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부친이 멤버로 있는 시오토 C.C.의 프로
잭 그라우트와 만나는 인연을 갖게 된다.

13세에 핸디캡 3으로 70년대의 벽을 허물고, 그후 몇 년간 각종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하여 세계 아마 골프계를 평정했다.

1961년 U.S.아마추어 우승후, 그는 프로 골퍼사상 가장 화려한 경력을 갖고
21세의 나이로 프로로 데뷔한다.

그의 첫 P.G.A.투어 우승은 1962년 파머와의 연장전에서 이긴 U.S.오픈
(오크몬트나)이란 메이저 대회였다.

1963년 그는 마스터스와 P.G.A.선수권을 우승했고, 1965년 마스터스 9타차의
승리(2백71타)는 호건(2백74타)의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

보비 존스는 이 게임을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였다"고 했다.

1966년 첫 번째 브리티시 오픈(뮤어필트GC)에서는 좁은 페어웨이의 러프코스
를 아이언으로 티샷해 우승을 함으로써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그는 1967년에 7개의 메이저를 포함해 25개 대회를 석권했다.

니콜로스는 그해 벌투스롤CC에서 열린 U.S.오픈에서 2백75타로 19년간
지켜오던 호건의 대회기록을 경신하며 2위 파머를 4타차로 누르고
우승한다.

이로부터 니콜로스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20개의 메이저를 포함해
80여개가 넘는 대회를 석권한다.

1968~69년, 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온다.

그러나 스승인 그라우트의 도움으로 슬럼프를 벗어난 니콜로스는 모든 사람
의 의문을 잠재우며 다시 타이틀 사냥에 나선다.

1975년 그 잊지못할 마스터스 대회를 미국기자 협회는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임이다"라고 불렸다.

1980년 그는 전문가들의 예언을 뒤집어 놓으면서 US오픈을 다시 석권한다.

그리고 1986년 46세의 나이로 마스터스에서 6번째 우승했다.

이 대회가 그의 마지막 메이저대회 우승이 된다.

현대 골프사는 니콜로스를 20세기의 선수로 일컫는데 그 이유는 그가
보유하고 있는 8번의 상금왕과 평균타수의 기록, 그랜드 슬램때문이라 할수
있다.

1990년대에는 골프코스 설계사업에 참여한다.

또 "골든 베어"라는 이름으로 여러 스포츠 관련 회사를 차려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만50세가 되던 1990년 시니어 투어에 합류하면서도 모든 메이저와
P.G.A.투어에도 참여하는 저력을 보였다.

1974년 명예의 전당 초대멤버로 추대된다.

< 전 미 PGA 티칭프로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4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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