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눈 좋아지기. 머리 좋아지기"

새해 벽두에 다짐한 내 생활의 목표이자 골프에서의 목표다.

눈이 나쁘면서도 안경과 콘택트 렌즈를 싫어하는 나는, 덕분에 안보이는대로
대충대충 심지어 운전도 눈에 보이는 만큼만 해 크고작은 접촉사고도 많이
일으켰다.

필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덕너머 벙커가 도사리건, 물이 흐르건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만큼만 볼을
보내고 퍼팅 라인도 대충 읽어 안들어가도 그만, 들어가주면 "운"이라 여기곤
했다.

하지만 보다 총명하고 정확한 생활을 위해 나는 조만간 눈좋아지는 수술을
할 작정이다.

일단 눈이 좋아지면 아주 많은 것을 볼수 있을 것이다.

퍼팅라인을 귀신같이 읽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면의 것들까지 모두 모두
볼 것이다.

볼을 찾아 산을 오르는 캐디 언니의 땀방울을 보고, 그게 내가 잘못 보낸 볼
때문이라는 사실도 보며, 이런 "퍼덕이"를 위해주는 동반자의 따뜻한
마음까지도 볼 것이다.

지난해에는 간과하고 넘어갔었던 모든 것을 다 볼 것이다.

"머리 좋아지기"라는 목표 역시 지난해에 대한 뼈저린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정말 자신있게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못하고 이일 저일 사이를
배회하며 결국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듯한 지난해.

필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느 채에서나 다 만능이 될 수 없을진대 나는 모든 채를 다 잘 다루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내가 4번 아이언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땀을 흘렸던가.

하지만 새 세기에는 영리해지기로 했다.

한 번도 제대로 맞지 않아 괜히 가방만 무겁게 했던 4번 아이언을 과감히
접을 계획이다.

대신 내가 자신있어하는 페어웨이우드샷이나, 일말의 가능성이 보였던
피칭웨지샷을 더욱 적극 연마할 계획이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잘하는 한가지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가 21세기의 정신 아니던가.

자신없는 분야라고 검증되었다면 그를 접고 자신있는 분야만을 더욱
계발하는 것!

비록 4번 아이언에서는 실패했지만, 나는 다른 페어웨이 우드샷으로
롱아이언에서의 실패를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여기에 새로운 세기의 힘까지 실려주니 무엇이든
다 할수 있을 듯한 요즘이다.

골프도 지난 세기와는 달라 드라이버도 쳤다하면 "붕붕", 페어웨이를
가르고 퍼팅도 갖다 대기만 해도 쏙쏙 빨려들어갈 듯하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요즘,
다만 눈덮인 필드가 야속할 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