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들어 골프의 현대화는 빨라진다.

대중화된 TV의 골프중계로 인해 골프의 인기는 순식간에 하늘을 찌르듯
상승하고 프로 골퍼들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골프 용구사와 계약하는
일들이 예사로워졌다.

1953년 미 PGA투어 총상금이 50만달러를 넘었고 1958년에는 100만달러를
넘는 스포츠로 발전하였다.

골프광이던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되면서 백악관정원에 퍼팅그린이
생겼다.

대통령은 매년 마스터스 우승자와 라운드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었다.

이로 인해 유명인사를 초청해 대회 전날 치르는 "프로암" 형식의 대회도
이때 시작된다.

1950년 말부터 1960년대에 TV와 매스컴을 통해 미국골프의 혁명을 거의 혼자
힘으로 일으켜 오늘날의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끌어올린 골퍼가 있다.

바로 아놀드 파머(1929~)다.

그의 공격적인 스윙 과감한 어프로치와 퍼팅 마지막날의 돌격적인 경기운영
은 순식간에 많은 팬들을 갖게 되었다.

그는 펜실베니아 라트로브 골프장 그린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나 3세때 골프
클럽을 잡는다.

그의 아버지는 템포와 균형등은 저절로 터득하리라 믿고 그가 자유롭게
있는 힘을 다해 스윙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의 스윙은 교과서적이 아닌 것으로 보이나 임팩트존을
통과할때의 모습은 완벽에 가깝다.

그의 드라이버샷은 길고 정확했으며 아이언샷은 명인이었다.

퍼팅을 할 땐 마치 돈을 주머니에 넣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다.

그는 1958~1967년 56개 대회의 우승과 함께 4년간의 상금왕을 차지한다.

4회의 마스터스 우승, 2회의 브리티시오픈, US오픈, US아마오픈 등 수많은
타이틀 획득으로 그는 골프역사상 최초로 상금액수 100만달러를 돌파한다.

1980년대부터 매년 PGA투어 상금왕에게는 "아놀드 파머"상이 수여된다.

아마추어 때부터 그는 매우 공격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이끌어 나갔고
좋은샷이든 나쁜샷이든 그의 표정은 항상 변함이 없었다.

가끔 던지는 조크와 익살스러운 미소는 대회때마다 수천명이 넘는 갤러리를
따르게 했다.

팬들은 그가 꼭 해내야 할 상황에 처하면 기적도 이룰수 있는 사람으로
믿고 있었다.

1960년 마스터스에서는 마지막 2홀을 연속버디로 승리했고 같은해
US오픈에서는 마지막날 65타란 놀라운 성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던 대회를
승리함으로써 "돌격대(Charger)"란 별명이 붙는다.

그는 사업에도 수완이 있어 여러가지 골프사업으로 셀수도 없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투어골프로는 제일 먼저 자가용 비행기를 구입해 세계를 다니며
사업과 시범경기등에 시간을 보냈다.

이때문에 골프대회는 시간이 날때만 참가했다.

이 모든 것들은 게임에 도움이 안되었고 결정적인 순간의 퍼팅이 그를
외면하고 모든 샷에도 힘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1964년 후로는 메이저 대회 우승도 없었다.

수많은 갤러리들은 그가 우승후보가 아닌 상황에서도 퍼팅을 할 때는
"볼아 들어가라"고 함성을 질러댔다.

1988년 60세가 넘는 나이에도 크레스타 클래식 시니어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해 오늘날 모든 이들은 그를 "골프의 황제"로 칭하고 있다.

1974년 세계 명예의 전당 초대멤버, 1980년 PGA명예의 전당에 추대된다.

< 전 미국 PGA 티칭프로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3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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