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두 시간.

약속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휴대폰에, 호출기에 어떻게 해서든 연락할 방법이 있는 요즘은
그조차 보기 힘든 풍경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좀처럼 기다릴일 없을 듯한 요즘, 무언가를 위해
두 세시간을 꼬박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곳은 다름아닌 퍼블릭 골프장.

시내와 가까운 곳이었고 코스도 멤버십골프장 못지 않은 곳이어서인지
골프장 입구부터 쭉 늘어선 골프백들은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대공원 청룡열차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이 마음 설레며
줄지어 서게 만드는 것.

그 또한 골프의 "막강한 힘"이었다.

사실 4명이 한팀을 만들어 가야하는 회원제 골프장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동참하는 경우도 있지만 퍼블릭은 좀 달랐다.

기본적으로 그린피가 저렴하다는 이점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골퍼들도 많을
것이다.

"골프치고 싶어 죽겠다. 그런데 같이 갈 동반자가 없다. 그렇다면 나 혼자
가도 되는 퍼블릭은 어떤가. 몇시간 기다려야 된다? 그것쯤은 기쁜 마음으로
희생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퍼블릭코스의 열기는 회원제골프장과 비할바 아니었다.

그야말로 골프 한가지만을 생각하는, 순도 1백%의 열망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나는 그날 퍼블릭코스에서 더 기분좋게 플레이할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을
느꼈다.

우선 한팀으로 짜여진 동반자에게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날 나와 함께 간 예쁜 레슨프로를 의식해서인지 우리와 한팀이 된 두명의
남성골퍼들은 쳤다하면 미스샷 투성이었다.

캐디언니는 "저분들요. 너무 멋져 보이려고 힘을 줘서 저러시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독한 맘 먹고 와서 낯선 동반자 때문에 샷이 엉망이 되면 좀
억울하지 않은가.

그러나 필요이상 냉담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 앞팀은 아주머니 두분과 젊은 남성 두명이 한팀이 되었는데 어찌나
서로 무관심한지 찬바람이 휑휑 불었다.

그 즐거운 골프를 끝까지 화난 얼굴로 플레이 하면 시간이 아까울 것이다.

한편 퍼블릭일수록 슬로 플레이와 실력이 안되는 내기골프는 금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 티샷거리를 서너번만에 가서는 중간에 휴대폰까지 받는 골퍼.

거기다 내기골프까지 겹쳤던지 그린위에 겨우 올라서는 스리퍼팅 아니면
포퍼팅.

이제나 저제나 차례만을 기다리는 그 수많은 골프백들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오늘도 골프에 대한 일념으로 퍼블릭코스에서 발 동동 구르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아, 우리나라도 그리운 순간에 바로 골프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