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차 대전으로 인하여 경제침체에 빠진 영국의 모든 골프대회는 수년
동안 중단되었다.

그로 인하여 영국 골프계는 시들어가고 있었고 미국 골프계는 향상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1923년쯤을 기해 세계골프의 주권은 미국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미국 골퍼들의 우월감이 상승하던 1920년대는 미국 골프사의 황금기로서
이름을 떨친 사람이 많이 나왔다.

그 중 한명이 미국 골프의 위상을 드높이고 정말 화려한 골프인생을 산
뉴욕태생의 월터 하겐(Walter Hagen 1892~1969)이란 골퍼였다.

당시 그는 매치플레이 경기에서는 세계최고의 권위자였다.

하겐의 스윙은 그리 훌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쁜 상황에서도 기가 막힌 샷을 구사,
버디퍼팅을 성공함으로써 한번도 페어웨이를 벗어나지 않은 선수를 이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심리학과 쇼맨십의 대가였던 그와 같은 장점을 이용하여 많은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어 수도 없이 많은 대회를 석권했다.

"헤이그"(Heig)라고 더 잘 알려진 그가 아직도 보유하고 있는 기록으로
5개의 PGA타이틀, 2개의 US 오픈을 포함해 11개의 메이저 대회, 80여개의
각종 타이틀, 1,500여번의 시범경기가 있다.

프로 골퍼로서는 세계최초로 100만달러를 벌었고 그는 그 많은 돈을 다
파티와 친구들을 위해 써버린다.

그의 익살맞은 행동과 화려했던 골프인생은 한 권의 책에 다 담기도 모자랄
정도다.

1922년 브리티시 오픈때, 대회주최측은 모든 골퍼는 클럽하우스 안에 있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하겐은 자신은 프로골퍼지 신사가 아니라며 자신의 리무진을
클럽하우스 앞에다 대고 뒷자리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통에 그 소식을 전해들은 주최측은 그곳에다 바리게이트를 치는 소동을
빚은적이 있다.

그날 그는 미국태생으로는 처음으로 브리티시 오픈을 석권했으며, 그후에도
같은 대회를 세번이나 더 우승했다.

그리고 세계 2차대전 바로 전쯤에는 모든 대회에서 은퇴를 했다.

그는 또 아마추어와 프로들간의 보이지 않던 사회적인 벽을 허물고
대회때마다 프로들이 가질수 있는 상금을 최대한으로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왕실로부터 "경"의 작위를 받았으며, 1940년 미국PGA 명예의전당,
1974년 세계골프 명예의전당에 오르는 영예를 갖는다.

진 사라젠은 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오늘날 거액의 상금을 향해 뛰는 모든 프로골퍼들은 그들의 손에 상금이
쥐어질 때마다 마음속으로 하겐에게 감사를 해야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큰 상금이 걸린 프로 골프대회란 하겐에 의해 만들어졌으니까"

< 전 미PGA 티칭프로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