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줄기와 북한강 줄기가 만나는 능내리 팔당호.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겹겹이 주름접은 물살이 호반 위를 환상적으로
수놓는다.

때론 비밀스런 안개가 하루종일 낮게 깔려 심란하게 술렁이는 곳.

그곳에 가면 왠지 잃어버린 옛 사랑을 만날 것만 같다.

"옛 사랑이여/낙엽송과 사철나무와 너도밤나무 아래에서 듣던/치르치르와
미치르의 이야기도 이젠 살갑지 않다/풀여치 소리가 한창이던 무렵/너는
북한강을 향해 가던 날의 짙은 안개였고/나는 달무리 진 하늘을 빠르게
흘러가던 구름이었다"(박선욱의 "양수리" 중에서)

경기도 광주군의 천진암을 찾아가는 길목에는 낭만과 서정 넘치는 팔당호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붕어찜으로 유명한 분원마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분위기 있는 숱한 카페들이 줄지은 퇴촌을 지나 점점 깊은 산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한 길은 아껴 달리고 싶을 만큼 한적하고 분위기 있다.

광주군의 앵자산(6백76m) 서쪽 골짜기에는 한국가톨릭이 움튼 천진암이
자리하고 있다.

천진암은 조선 정조 2년(1779)에 신학을 연구하던 서학파 권철신 이벽
정약전 정약용 이승훈 등 젊은 학자가 모여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고 토론하던
곳이다.

장차 가톨릭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터전이었던 셈이다.

원래는 고려 말에 세워진 불교 암자터였던 천진암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세월의 흐름속에 묻혔다.

그러나 78년 천진암 강학회 기념사업회가 조직되면서 본격적인 성역화
사업에 들어갔다.

79년 오랜 노력 끝에 경기도 포천에서 천진암 강학회와 가톨릭 한국 전교의
주역인 이벽의 무덤을 발견해 천진암터로 이장했다.

80년에는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비를 세웠다.

이어 천진암 갈멜수녀원이 창설되고 81년에는 이벽과 함께 초기 한국가톨릭
의 기둥이었던 순교자 정약종 권철신 권이신 이승훈의 묘가 차례로 옮겨져
이벽의 무덤 곁에 묻혔다.

경내에는 다섯 성현의 묘역 외에 갈멜수도원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소
강화당 신도수련원 등이 12만평의 넓은 터에 자리잡고 있다.

86년부터는 천진암 대성당 1백년 계획을 확정해 대성당을 비롯 경학당
박물관 기념탑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옛 천진암 터인 좁은 골짜기에는 79년 이장된 이벽을 비롯한 5성인의
무덤이 나란히 누워있다.

44단의 돌계단이 마련되고 2백년전의 강학회 때 참석자들이 마셨다는 샘물이
지금도 솟아나고 있다.

이준애 < 한경자동차신문 출판부장 >

[ 둘러볼만한 곳 ]

박석계곡 우산 2리에는 관광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우산리 휴게소 주변 계곡에는 평상을 정연하게 깔아놓아 피크닉을 즐기기
좋도록 꾸몄다.

그윽하고 정취 있는 숲을 지나 계곡으로 오르면 박석거리란 마을이 있다.

박.석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모여 살던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세칭 박석계곡이라 부르는 이 계곡은 여름뿐 아니라 가을에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담원 퇴촌에 있는 담원은 작은 연못과 앵초 매발톱 옥잠낭 금낭화 타래난
술패랭이 등의 야생화가 앞마당에 곱게 핀 분위기 있는 카페다.

때를 잘 맞춰 그곳을 찾으면 자연과 어우러진 근사한 공연을 볼 수 있다.

목련이 필 때면 7명의 남성 성악가들이 펼치는 목련음악회가, 또 서울대
아카펠라 인공위성의 유쾌한 노래마당을 만나거나 임동창의 열정적인 무대를
바로 코앞에서 접할 수 있다.

또 운좋은 날이면 손님으로 이곳을 자주 찾는 가수 홍민의 즉흥 라이브도
만나게 된다.

담원에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색다른 별미가 기다린다.

코스로 나오는 산야초 정식(1만8천원)은 대기업임원이 일류 호텔음식을
뒤로 미루고 외국손님을 대접할 정도로 정성과 맛이 돋보이는 색다른 음식.

계절별로 나는 산야초를 주 재료로 갖은 맛을 내는데 도자기에 담겨 나오는
음식은 젓가락을 대기 아까울 만큼 예술적이다.

정식을 먹으려면 사전에 꼭 예약(0347-767-5870)해야 한다.

가볍게 먹기에는 메밀국수(5천원)가 제격.

독특한 장국이 입맛을 돋운다.


[ 천진암 가는 길 ]

중부고속도로 광주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가 팔당 하남으로 이어지는 국도
45번을 탄다.

번천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지방도 88번을 타면 출렁이는 수면위로 안개가
짙게깔린 팔당호를 가로지르는 무드 넘치는 드라이브 코스가 눈앞에
펼쳐진다.

광동교 퇴촌면 천진암 주차장까지 12km 남짓.

담원에 가려면 퇴촌면을 지나 양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2.5km 가면 경희대연습림 관리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1km 들어가면 산 중턱에 담원이 자리하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