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다.

푸르른 하늘 아래로 드리운 맑은 공기엔 티끌 한점이 없다.

시선이 닿는 한 거칠 것 없는 시야엔 짙푸른 신록이 끝없이 내달린다.

일본 후쿠시마현을 처음 찾은 관광객들은 우선 그 청명함에 놀라게 된다.

"대자연의 보고"로 불리는 후쿠시마현 가운데서도 서부 아이즈 지역의
반다이산을 중심으로 한 대고원지대는 특히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자동차로 해발 2천m의 정상에 이르는 산길을 굽이 굽이 오르다 보면
"스카이라인"이라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아찔히 내려다뵈는 발 밑으론 싱그런 삼림이 초록색 융단처럼 깔려있다.

그 완만한 곡선은 꼭 사십줄의 풍만한 여인네가 비스듬히 기대누운 자태다.

울창하다는 표현이 반다이산보다 어울리는 곳이 또 있을까.

죽죽 뻗은 자작나무와 이름모를 활엽수들이 햇빛 한자락 파고들 틈도 없이
빽빽하다.

가을이면 단풍이 산 전체를 물들이며 총천연색 빛의 향연을 벌인다.

반다이산에만 스키장이 30개.

겨울이 되면 일본 전역에서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반다이고원에는 옛날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분화구도 여럿 남아있다.

고원 북쪽의 아즈마분화구는 최근까지도 활동을 했다.

80kg의 건장한 장정도 휘청댈만큼 대찬 바람속을 간신히 뚫고 분화구
어귀까지 오르고 나면 가슴이 뻐근히 조여온다.

반다이고원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고원 깊숙이 숨겨진 "고시키누마"
다.

탄츠 미도로 아카누 벤튼등 수십개의 화산호가 군락을 이룬 거대한
호수지대다.

에메랄드, 잉크블루, 진초록, 붉은 장미빛...

오색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호수마다 기기묘묘한 색깔을 품고 있다.

보는 각도나 날씨에 따라서도 그 빛을 달리한다.

화산 분출의 영향으로 호수마다 산성도나 성분이 각기 다르기 때문.

호수별로 2m에서 13m에 이르는 바닥이 죄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

그 빨려들 듯한 투명함에 "마녀의 눈동자"로도 불린다는 촌로의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린다.

한시간 남짓 호수를 도는 산책코스는 굽이를 돌때마다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도무지 지루하지 않다.

어른 허벅지 굵기의 비단 잉어들이 노니는 호수는 어디에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한폭의 그림이다.

호수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마음 한구석엔 "한없이 투명한 블루"라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제목이 맴돈다.

후쿠시마 현에는 아이즈 반다이고원외에도 수많은 관광명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국적이진 않지만 친숙하고 소박한 느낌과 장대한 대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맛볼 수 있는 곳.

바로 후쿠시마다.


<> 민속공예 =아이즈 지역은 특히 칠기가 유명하다.

재료가 되는 목재가 워낙 풍부한 덕분.

특산품 가게라면 어디나 다양한 칠기외에도 빨간색 목각 소가 눈에 띈다.

손가락 한마디도 채안되는 열쇠고리에서부터 팔뚝만한 크기의 장식품까지.

이름하여 "아카베코".

일본 사투리로 "빨간 소"란 뜻이지만 아이즈 주민들에겐 "행운의 소"로
불린다.

옛날 옛적 평화롭기만 하던 아이즈 지방엔 무서운 병마가 덮쳤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열이 펄펄 끓고 온몸이 시뻘건 점으로 뒤덮인 끝에
목숨을 잃었다.

그러던 어느날 빨간색 소 한마리가 나타나 병에 걸린 사람들을 하나씩
쓰다듬고 사라졌다.

환자들은 씻은듯이 병이 나았고 이후 아이즈에서는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로
집집마다 아카베코를 놓아두는 풍습이 생겼다고.

<> 숙박시설 =아이즈에는 비즈니스 호텔이나 일본 전통여관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다.

반다이고원주변 숙소는 일본의 옛 시골풍으로 꾸며져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대부분 온천이 준비돼 있고 노천탕도 많아 푸른 하늘이나 별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즐기는 기분이 그만이다.

종업원들의 깍듯한 서비스도 훌륭하다.

하지만 일어를 모르면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꽤 괜찮은 호텔에서도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가격이나 상세한 여행정보는 아이즈 관광안내소(81-0242-32-0688)에서
제공해 준다.

< 후쿠시마=김혜수 기자 dears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