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목계장터)

시인 신경림은 남한강변 목계의 정취를 이렇게 노래했다.

그곳이 국내 제일의 수석 산지이거나 경관이 빼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강물에 실려간 인간군상의 아픈 내력들이 새삼 가슴을 찔러온 탓이다.

그는 시집 "남한강"에서 강물에 수몰된 역사의 잔해를 건져 올려 짙은
서정을 담아 보여준다.

때문에 시집 "남한강"의 무대인 충주 일대 남한강변 기행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남한강은 강원 삼척 대덕산에서 발원해 영월 단양 충주를 돌아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한다.

남한강은 이곳에서 생산된 쌀을 마포로 운반한 뒤 서해 소금과 새우를
가져왔던 통로였다.

충주 일대 남한강은 신 시인을 낳아 키웠고 "시적 토양"을 제공한 곳이다.

시집 "남한강"기행의 출발점은 시인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 노은면 연하리로
잡는게 좋다.

이곳 풍경은 쇠락한 우리 농촌모습 그대로다.

시인의 생가는 나지막한 담벼락으로 둘러쳐진채 낡은 슬레이트지붕을
이고 있다.

대문앞에는 늙은 느티나무가 이정표처럼 섰고 그 앞으로 논밭이 펼쳐진다.

생가 너머로는 자그마한 보연산이 자리잡고 있다.

두드러지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우리네 농촌 풍경의 전형이다.

설날이 오면 시인의 표현대로 "떡방아 디딜방아 소리 쿵덕대는"그런
마을이다.

그러나 방아소리 나던 평화로운 날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곳이 바로 중원이라고 불리던 열국의 각축장이었기 때문이다.

중원고구려비와 중원탑평리중앙탑, 탄금대 등이 그 흔적이다.

시인은 이들 유적에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쓰라린 역사를 본다.

그는 또 "남한강"에서 일제시대 뱃사공 돌배와 그의 애인 연이의 비극을
추적한다.

그 공간은 목계 가흥 청풍 연풍 등 강변 마을과 장터들이다.

시인은 남한강변의 겨울 풍경을 "동저고리 스미는 바람은 더욱 차고/눈바람
은 극성스럽게 몰아닥치고/강물은 꽁꽁 얼어붙고..."라고 그려냈다.

일제 침탈로 돌배와 연이의 사랑이 깨져버린 탓에 시인의 눈에 세상은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이제 돌배가 나룻배를 운항했던 복여울나루(중원군 소내면 복탄리)와
북진나루(제원군 청풍면)는 충주댐건설로 수몰됐다.

남한강 수운의 중심지였던 목계나루도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았다.

목계는 "젊은 아낙들이 내 사내 닮은 돌을 찾는 "수석산지일 뿐이다.

하지만 시인은 "겨울바람 앞에도 임의 품은 훈훈하고 얼음밑에도 강물이
흐른다"고 희망을 건져 올린다.

남한강을 지켜온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감지한 것이다.

한겨울을 이겨내면 "낮은 언덕위로/떼지어 핀 흰 싸리꽃/물결위에 쏟아지는
금빛 숫햇살"을 만날 것으로 믿는다.


<>가는 길=서울~이천~장호원을 거쳐 2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10분정도
가면 음성군 원당리에 닿는다.

그곳에서 5백20번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노은면 연하리에 있는 신시인의
생가가 나온다.

이어 중원고구려비~탑평리중앙탑~탄금대를 본 뒤 북쪽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목계를 둘러보는게 편하다.

각 행선지는 차로 총 1-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목계에는 남한강파크장(*0441-847-8905) 백운장(*0441-847-5008) 등
숙박시설이 있다.

수석식당(*0441-852-9407)과 강변가든(*0441-847-9356)등에서 요기를
할수 있다.

< 유재혁 기자 yoo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