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대학살

= 1921년 윙드 풋의 회원들은 당대 최고의 코스설계가였던 A.W.
틸링허스트에게 단 한마디만 주문했다.

"가장 어려운 코스를 만들어 달라"고.

"만들어진 코스"는 역시 가장 어려웠다.

윙드 풋 웨스트코스에서는 이제까지 5번의 US오픈이 열렸는데 (PGA
선수권은 이번이 처음)

그 5번의 대회중 4라운드 합계 언더파 스코어를 기록한 선수는 단 두명에
불과했다.

특히 1974년 US오픈은 "필드의 대학살"로 명명될 정도로 선수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다음이 74년 US오픈의 스케치.이는 윙드 풋의 개성을 적나라하게
설명해준다.

<>당시 1라운드 1번홀 (파4-4백46야드)에서 잭 니클로스의 7.5m 파퍼트는
홀을 9m나 지나쳤다.

전성기시절 니클로스 퍼트가 어떻게 9m나 더 흐른단 말인가.

<>1라운드에서 44명의 선수가 10오버파인 80타 이상을 쳤고 존 마허피
(78년 챔피언)같은 선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사방 2m 짜리 판유리를 사서 한쪽으로 기울여 놓고 퍼팅연습 할
생각도 했다.

그 기울어진 판유리에서 볼을 세울 수 있어야 윙드 풋에서의 다운
힐 퍼트를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당시 대회위원장인 샌디 테이텀이 호텔에서 프로들을 만났다.

그중 한명이 테이텀에게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는데요"라고 말했고 다른
한명도 즉각 맞받아 쳤다.

"무척이나 피곤하실꺼야. 밤새 그 빌어먹을 그린에 엎드려 왁스칠을
해댔으니 얼마나 힘드실까"

글쎄 얼마나 그린에서 열 받았으면 그 정도로 빈정댈까.

<>왁스를 칠했건 안했건간에 "콘크리트 그린"인 것만은 확실했다.

1라운드후 자동차 한대가 길을 잘못들어 1번홀 페어웨이로 들어갔고
나오다가 그린을 타이어로 짓밟았다.

그런데 페어웨이에는 바퀴자국이 선명했으나 그린은 전혀 자국이 없었다.

너무 단단해서 타이어자국조차 나질 않았다는 얘기.

<>러프도 악명높았다.

리 트레비노는 "볼이 러프에 빠지면 볼을 찾는 것 보다 볼을 찼던
캐디를 잃어 버릴까 겁난다"고 조크 할 정도.

<>.7오버파가 우승스코어 "74년 윙드 풋 대학살"의 결과는 7오버파
2백87타라는 우승스코어 (헤일 어윈)로 증명됐다.

1984년 윙드 풋에서 벌어진 US오픈은 10년전의 악몽때문인지 코스세팅이
관대해졌다.

그래도 4라운드 언더파를 친 선수는 퍼지 젤러와 그렉 노먼 두명
(4라운드 합계 4언더파 2백76타)뿐.

그 두명은 이튿날 18홀연장전을 벌여 67타의 젤러가 75타의 노먼을
제치고 우승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