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관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진료실을 찾은 55세의 A부인은 "조용한 바닷가에서 삶과 이별하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처음에는 쉽게 피곤해지고 잠을 설치는 일이 잦아지더니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쓰이고 걱정거리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유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소화가 안되고 만사가 귀찮다고 했다.

그는 은행원이던 남편이 2년전 직장을 퇴직했고, 작년 가을에는 딸이
결혼해 곁을 떠났다.

아들은 신나게 대학을 다니느라 자신에게 좀처럼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느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가정주부로만 30여년을 보냈고 월경이
없어진지도 4년이 됐다.

A부인이 호소하는 것들은 전형적인 여성 갱년기 우울증의 증상들이다.

의욕저하 무력증 집중력저하 건망증 인지기능장애 등의 정신증상외에
소화불량 빈맥 등의 신체증상을 겪는다.

공들여 키운 자식들은 모두 결혼 직장 대학으로 집을 떠나고 텅빈 집에
홀로 남게 된 어머니는 마치 빈둥우리에 앉아 있는 어미새같은 허전함
마음과 인생무상을 느끼는데 이를 "빈 새둥우리(공소)증후군"이라고 한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시행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40대후반에서 50대
후반까지의 여성가운데 우울증을 앓은 사람의 비율은 6%로 같은 연령군의
남성보다 두배 이상 높다.

의욕저하, 피로감, 느려지는 행동, 슬픈 감정 등이 갱년기 여성에게
나타날때 주위에서는 나이탓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나이가 들었다고 삶의
만족에 대한 기대치와 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갱년기 우울증이 상실감등 사회심리적인 원인으로 생긴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신경생물학적 원인들이 이보다 더 갱년기 우울증의 발병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즉 여성은 폐경을 전후해 난포호르몬이 급격히 감소하면
심장관상동맥질환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대뇌변연계 -> 시상하부 -> 뇌하수체
축의 스트레스호르몬을 활성화시킨다.

대뇌변연계는 감정의 정동과 단기기억을 관장하는 곳으로 시상하부에서의
부신피질자극호르몬(ACTH)분비를 촉진한다.

시상하부는 이에 따라 뇌하수체에서 코르티솔등 부신피질호르몬이
분비되도록 자극한다.

우울증에 빠지면 정상인에 비해 약한 스트레스에 의해서도 이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쉽게 분비된다.

부신피질호르몬이 과잉분비되면 대뇌의 전두엽과 대뇌 신경세포의
기저핵에 산재된 신경세포군을 손상시켜 우울증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인간의 평균수명이 짧아서 여성들은 평생동안 아이를
가질수 있었다.

그러나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여성은 폐경기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다행스럽게도 항우울제를 이용한 약물치료, 전자파동요법으로 환자의
약80%가량이 치료될수 있다.

전자파동요법은 기존 교류전기를 이용한 전기자극요법이 미미한
뇌손상을 일으키는 단점을 개선한 것이다.

결국 병을 숨기지 말고 적극 치료하겠다는 당사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