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성 골퍼들은 골프를 시작했다가 좌절하여 곧 그만두기도 한다.

공중을 날아야 할 볼이 떼굴떼굴 구르기만하고, 벙커란 벙커는 다
찾아가고, 뒤 팀의 남성들은 금방이라도 따라와서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고, 연습할 시간도 별로 없고, 또 연습할 방법도 잘 모르고, 골프장은
항상 골퍼들로서 붐비고, 돈은 엄청나게 들고...

어느 날 그들은 골프 자체를 포기한다.

그러나, 이 골프라는 운동을 당분간 지속하다보면, 발생하는 상황에 따라
적응을 하다 보면 하나 하나의 성취감에 빠져들 것이다.

여러분은 가끔씩 나오는 완전무결에 가까운 샷에 마음속에 쾌재를 부를
것이며, 그 재미로 인해 점점 더 골프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골프란 결혼과 같다.

사소한 언쟁으로 부부싸움을 가꿈 하듯이 골프에서도 아주 사소한 작은
실수 하나가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나도 포기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헤드 프로로서 오스틴에서 활약하고 있을 때 골프가 나에게 준
시련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당시에 나는 우리클럽의 코스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의 기록이자 오스틴 CC의 기록은 60이었다.

파70인 코스이다.

즉 10언더의 누가 넘어다볼 수 없는 점수였다.

남의 클럽을 방문해서 게임을 할 때는 아마도 베이브 디드릭슨이나
바이른 넬슨이었다 해도 코스신기록이 몇타이며 누가 보유자인지를 물었을
것이다.

만약 그 기록이 홈에 있는 프로가 보유하고 있다면 그 기록을 깨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프로로서의 예절이었다.

지미 데마릿은 내가 오스틴의 기록보유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프로의 예절을 모르는바는 아닌 그였지만 우리 클럽을 방문할 때마다,
지금 스킨스라고 알려진, 신디케이트 게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은
전혀 그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날 지미는 아웃에 30타, 인에 29타 총 59타를 쳐서 오스틴의 기록을
깨고 동시에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팔꿈치의 완벽한 동작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지미의 그 팔로우 드로우와 팔꿈치의 동작은 나의 골프교습에
자주 이용되었다.

나의 기록을 상대방에 의해서 깨여졌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 기분이 상했다.

나는 오스틴의 챔피언이었다.

이 기록은 나에게 속해야 되었었다.

겉으로야 안 그런 척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가슴이 아팠다.

문제는 지미가 59타를 친 며칠 뒤의 일이었다.

극단적인 일이 골프에 아니 인생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번역 : 조명대 < 베스트미디어 대표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