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언제 찾아가도 우리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고향 같은 산이다.

소백산맥 최남단에 우뚝 솟은 지리산은 면적 4백38.92평방km(1억3천만평)에
동서 60km, 남북 32km, 둘레 3백20km로 장장 8백리에 달하는 광활한 산이어서
그 언저리에만 가도 웅장함에 넋을 잃게 된다.

주봉인 1천9백15m의 천왕봉을 비롯해 1천m가 넘는 봉우리만 20개가 넘는
거대한 산악군인 명산 지리산에는 신비한 계곡마다 천년고찰이 고즈넉히
자리잡고 있다.

가장 크고 장엄한 화엄사, 감로천과 어우러진 절경 천은사, 지리산의 첫
사찰 대가람 연곡사 등을 찾아 영산의 숨결을 느껴본다.

[ 화엄사 ]

천학이 춤을 추고 옥수가 속삭이는 화엄사계곡에 자리잡은 화엄사는
주변의 수려한 산세에 화답하듯 장엄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고찰이다.

또 화엄사는 노고단으로 오르는 등산코스의 기점이기도 해서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경승지에 터를 잡은 대찰 화엄사는 각황전앞 석등, 각황전, 4사자3층석탑
등 국보3점과 보물 4점 등 많은 문화재를 거느리고 있어 볼거리도 많다.

화엄사 경내에 들어서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대웅전 왼쪽편에서
위용을 뽐내는 각황전이다.

현존하는 목조건물로선 국내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이 건물은 원래 장륙전이란 이름으로 신라 문무왕 10년(670년) 의상대사가
세운 법당으로 당시에는 사방벽에 화엄석경이 새겨져 있었으며 현재
1만4천여점의 석경파편이 남아 있다.

그러나 장륙전은 임진왜란때 소실되고 지금의 각황전은 조선숙종25년
(1699년) 계파선사에 의해 중건됐다.

각황전 앞뜰에 서 있는 석등도 높이 6.3m, 직경 2.8m로 국내최대규모를
자랑한다.

통일신라시대 불교중흥기의 찬란한 조각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각황전과 어울려 운치를 더해준다.

각황전 왼편으로 백팔계단을 타고 오르면 효대라는 낮은 언덕이 있고 이
곳에는 4사자3층석탑이 예쁘게 자리잡고 있다.

신라 진흥왕5년(544년)에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운 탑으로 특이한 의장과 세련된 조각솜씨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걸작이다.

보물 가운데서는 대웅전 양편에 서 있는 5층탑이 뛰어난 조형성과 섬세한
장식으로 눈길을 끈다.

이중 서탑에서는 지난 95년 탑의 보수작업중 부처님 진신사리 22과와
수정염주 등 유물 16종 72점이 발견되어 현재 대웅전앞 보제루에서 전시되고
있다.

노고단에서 시작된 거대한 좌우능선이 들녘을 향해 굼실거리며 달리다
걸음을 멈춘 자리에 위치한 화엄사는 절의 위치나 규모 등이 명찰로서의
조건을 모두 구비한듯 보이나 청정도량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점이
흠이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찾아오기 때문일까.


[ 천은사 ]

화엄사집단시설지구에서 10여분거리에 있는 천은사는 신라흥덕왕 3년
(828년)에 덕운조사와 인도의 중 "스루"가 세운 절로 전해지고 있으며
창건당시에는 감로사라고 하였다.

화엄사가 지리산의 대표적인 사찰로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천은사는
비교적 덜 알려진 까닭에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고 그래서 관광객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절 옆으로는 성삼재로 오르는 산악도로가 지나고 천은사계곡 감로천이
맑은 물을 토해내고 있다.

천은사 입구 계곡에는 수홍루(홍아문)가 그윽한 정취를 빚어낸다.

사진작가나 화가들이 사계절 수시로 찾아오는 이 곳은 주변의 자연 및
나무와 멋진 조화를 이뤄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천은사에는 천은사극락전아미타후불탱화(보물 제924호), 천은사극락보전,
천은사나옹화상금동불감 등의 문화재가 있다.

아미타후불탱화는 조선영조때 그려진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아미타불상으로
꼽힌다.


[ 연곡사 ]

화엄사를 세운 연기조사가 신라진흥왕4년(543년)에 창건한 절로 화엄사나
천은사보다 먼저 세워졌다.

창건될 당시에는 지리산에서 가장 큰 절로 웅장함을 자랑했으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등 두차례의 전쟁으로 크게 훼손됐다가 지난 81년에야
복원불사가 시작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연곡사 경내에는 동부도, 북부도 등 국보 2점과 보물로 지정돼 있는
서부도, 삼층석탑, 현각선사탑비 등의 문화재가 보존돼 있어 연곡사의 옛
모습을 짐작케 해준다.

섬진강변 외곡검문소에서 연곡사로 들어서는 길 주변에서는 옛날 지리산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층층이 잘게 쌓아 만든 계단식 논두렁의 곡선미와 가파른 언덕배기에
둥지를 튼 가옥들이 도로변 깊은 계곡과 어우려져 새로운 정취를 자아낸다.

연곡사뒤편으로는 피아골이 펼쳐져 있다.

< 구례(전남)=노웅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