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12일 오전 프라자CC구코스에서는 아주 뜻깊은 골프모임이
거행됐다.

모임 명칭은 "서울법대 87골프회".

공식기록이 있을 수는 없지만 이 골프회는 국내 아마추어골프모임의
"역사"를 대변할지 모른다.

명칭에 "87"이 들어갔다고 해서 1987년을 생각하면 오산.

87은 단기 4287년을 의미한다.

단기 4287년은 1954년이다.

다시말해 서울법대 54년도 입학동문(12회)들의 골프모임이다.

"87골프회"는 1973년 첫 모임을 가졌고 지난 12일이 무려 200회
기념모임이었다.

73년이면 우리나라 골프자체가 초창기였던 시절.

골프장도 한양이나 뉴코리아, 안양CC 등 10여군데 뿐이었고 골프대회도
한국오픈과 한국프로선수권등 단 2개뿐이었으며 골프인구도 수만명에
그쳤을 때였다.

87골프회는 73년 7월 15일 남서울CC에서 초대회장인 이기준 동문 (현재
재미)을 비롯, 12명이 참가한 가운데 첫샷을 날렸다.

그후 "세상이 어지러웠던 시절"에 몇번 걸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매달
정기적으로 주말골프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회원수는 당시 입학동기 300명중 절반인 150명에 이른다.

말이 200회지 실제 "진행상으로는" 대단한 결집이 아닐 수 없다.

이날 200회 모임에는 총 63명이 참가했다.

모두 나이 60이 넘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들은 여기저기서 악수하기에
바빴다.

아마 "골프"라는 매개가 아니면 63명이라는 "대단한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감격의 조우를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대단한 인물들"이란 표현을 한 것은 나름대로 사회 곳곳에서
"역할"을 하는 회원들이 많다는 뜻이다.

우선 이한동, 조순형, 최희준 의원이나 이시윤(감사원장), 김용태
(전 내무장관), 김덕(전 안기부장), 김성기(전 법무장관), 남재희,
이재화(헌재 재판관), 윤승영(전 서울고법원장), 황선 (전 대법관),
차상필(함북지사), 이병석(전 농수산부차관), 신영국(전 철도청장),
장선섭(경수로기획단 단장), 최만립씨(KOC위원) 등이 87회 회원들이다.

경제계는 손으로 꼽기가 힘들 정도.

현 회장인 허주욱씨(삼희투자금융 고문)를 비롯, 손홍균(서울은행장),
김광현(장기신용은행장), 이강환(생보협회회장), 김정열(능률협회부회장),
김주진(아남산업회장), 김광희(동아증권회장), 강대승(동성화학사장),
김규식(롯데제과사장), 구자춘(세웅산업사장), 홍승채(한국컴퓨터회장),
차승철(나라종합금융사장), 황병호(산업증권사장), 강순걸(유성물산사장),
안규환(안건사사장), 조석제씨(한국유통사장) 등이 87회 골프라이벌들이다.


<>.이 모임은 24년째라는 역사에 걸맞게 기록도 충실하다.

예를들어 200회 모임까지의 모든 스코어카드가 보관돼 있고 이번
모임후에는 24년 골프를 정리한 책자도 만들 예정이다.

이 모임은 또 항상 고속도로 근처에 모여 버스를 타고 골프장으로
이동한다.

교통도 교통이지만 그 시간에 사회나 자신 생활에 관한 의견들을
나누기 위함이다.

평균 20-30명이 모이는 월별라운드에서 3번연속 우승하면 트로피를
영구 보존하고 우승자는 그 다음 모임의 참가상을 마련하는 전통도 있다.

지금까지의 트로피 획득자는 불과 5명에 불과할 정도로 우승경쟁은
치열하다.

그러나 시합보다는 친구들끼리의 골프재미가 가장 "노골적"이라는
점에서 필드의 열기는 항상 뜨겁다.

일년에 한번정도는 지방으로 간다.

그러면 그 지방의 회원이 한잔 사게 마련으로 밤새 수십년동안의
인생을 얘기하게 된다.

라운드를 못하더라도 19홀에는 참석하는 회원도 많다.

한때 핸디캡 12에 장타를 자랑하던 이한동회원은 수년동안 골프를
삼가하고 있으나 2년여전 나산CC모임에서는 19홀에서 합류, 막걸리를
사기도 했다.


<>.200회대회의 우승자는 명완식씨(변호사)였다.

그는 핸디캡 12에 80타를 쳐 네트 68타로 챔피언에 올랐다.

메달리스트는 초대회장인 이기준씨.

이번 모임을 위해 미국에서 날아온 그는 62세의 나이에도 불구 2오버파
74타를 쳤다.

이번대회는 그 "역사성"을 감안, 핸디캡 18이상은 인정하지 않으며
챔피언을 가렸다고.

그러나 70대를 쳤건 월백을 했던간에 참석자들은 200회가 이어진 모임
자체가 아주 뿌듯하고 대견한 표정들이었다.

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법대 87골프회는 "미래의 3대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21세기대회(2000년 봄), 창립 30주년대회(2003년 7월), 300회
기념대회 (2006년 가을)에 한명의 낙오도 없이 다시 모일 것을 다짐했다.

서너명도 아니고 100여명이 40대초반부터 인생의 끝까지 골프를
함께하는 모임.

그것은 동문이나 친구들을 극히 소중히 여기는 "삶의 슬기"를 보여준다.

그들은 골프를 통해 언제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모습이다.

< 김흥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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