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학 4년을 고시반에서 지냈는데 1학년 입학을 하자마자 4학년된
선배님 한 분과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그 선배님은 1년뒤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합격후 합격소감을 말하는 가운데 이런 말을 하셨다.

"사람들은 흔히들 밑빠진 독에는 물을 채울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밑빠진 독에도 물을 채울수 있습니다.

밑으로 빠져 나가는 양보다 들이붓는 양이 많으면 밑빠진 독에도 물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지난 몇해 동안 책을 읽으면 읽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다아는 것
같지만 조금만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져 버려 무척이나 애를 태웠습니다.

그래서 가끔 자신의 머리가 나쁜 것을 원망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잊어먹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모든 고시생이 다 그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특히 지난 한 해 동안은 잊어먹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책을 읽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마치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기분으로 말입니다.

그랬더니 합격의 영광을 누릴수 있게 되더군요"

지난 9월3일과 4일, 양일에 걸쳐서 필자는 다섯명의 또 다른
골프매니아들과 아울러 하루에 36홀씩 72홀 스트로크플레이의 형식을 갖춘
미니골프대회에 참가했었다.

필자는 대회참가전 골프를 하기 시작한 이래 하루에 36홀을 돌아 본
경험이 단지 두번 있었다.

그래서 참가자들 대부분은 필자가 채력이 약해서 후반에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였다.

필자도 동감이었다.

필자의 스코아는 나인홀별로 42,37,38,38,35,37,38,40이었다.

마지막 64홀째부터는 확실히 체력이 밀어져서 집중력이 떨어짐을
절감할수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이틀을 집중적으로 골프만 하는 동안 체력열세로
인한 한계성을 느끼면서도 또다른 사실을 확인할수 있었다.

즉 홀을 거듭할수록 골프실력이 점점 늘어감을 느낄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연습장에 나가서 한시간 정도의 연습볼을 때리는
것은 현상유지에 그칠뿐 실력을 향상시킴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문득 지난날 선배님의 말씀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는 것이었다.

아울러 필자는 어느 해인가 홍수에 휩쓸려 천지가 뒤바껴 버렸던
충청도 보은의 모습을 보고 "역사를 뒤바꾸기 위해서는 보슬비가 아닌
바케쓰로 쏟아 붓는듯한 소낙비가 필요하다"고 묵상하던 기억을
상기시켰었다.

골프를 보다 잘 하기 위해서도 아마 그런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그런 노력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