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분이 지금처럼 그렇게 널리 알려지기 아주 오래 전에 필자는
우연히 책방에 들렀다가 성철스님의 선문답집을 접했었다.

그중에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왜 손가락을 쳐다보느냐"라는
말을 보고 상당히 흥분한 적이 있었다.

본질적인 것은 간과해 버린채 아주 피상적인 일들에 얽매이어 호들갑을
떠는 필자의 어리석음을 어쩌면 그렇게 정곡을 찔러 깨우쳐 줄수 있을까?

가까이 지내는 골프친구들이 모여 수일내에 하루에 36홀씩 이틀에 걸쳐
72홀 스트로크플레이로 대회를 벌이기로 했다.

이야기가 나온지는 벌써 두어 달이 지났지만 그렇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었는데 요즘 친구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있다.

그들은 대회개최지로 예정해 놓은 골프코스에서 연습라운드를 하면서
마치 PGA프로들처럼 코스에 대해 메모를 한다.

아이언이나 드라이버를 바꾸기도 한다.

그 중에 한 친구는 우리들 가운데 드라이버의 비거리가 최고이긴
하지만 쇼트게임에 약한 흠이 있는 사람인데 며칠 전에는 저녁을 먹고
지하실에 내려가 저녁 일곱시부터 밤 열두시까지 퍼닝연습을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이 무더운 여름날 라운드를 끝내고 친구들 몰래
곧장 연습장에 달려가서 네 박스의 연습볼을 쳤다고 한다.

연장자이신 K사장님께서는 체력이 약하다는 말을 자주 듣더니만 요즘
사모님께서 보약을 지어 주셨다고 한다.

이같은 친구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연습라운드에 따라갔다와서는 필자도
늦었으나마 남은 기간에 연습을 보다 체계적으로 하리라는 다짐을 하였다.

그런데 서두에 꺼낸 성철스님의 선문답은 필자가 오늘 아침
골프연습장에서 갑자기 떠올린 말이다.

그 과정은 이러 하다.

필자는 평소 지혜로운 자는 역경을 잘 극복해 내는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그리고 아마추어골퍼로서 뛰어난 플레이를 할수 있는지의 여부는
파이세이브의 성공률에 달려 있다고 본다.

또한 파이세이브는 그린 주위에서의 짧은 샷을 잘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골프연습장에서는 샌드웨지를 가지고 짧은 어프로치
연습을 중점적으로 하였다.

연발자국의 거리에서부터 삼십야드 그리고 오십야드까지의 샷만을 반복
연습한 것이다.

그렇게 하기를 한 시간쯤 하였을 무렵이었다.

문뜩 필자의 시선이 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클럽헤드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십야드의 샷보다는 삼십야드의 샷에서 그리고 삼십야드의 샷보다는
더 짧은 샷을 할 때에 필자의 시선은 더욱더 클럽헤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아울러 시선이 클럽헤드를 따라 움직일수로고 뒤땅을 치는 빈도가
많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알아 차리는 순간 문득 앞서 본 성철스님의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왜 손가락을 보느냐?"라는 선문답이
떠오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0일자).